‘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까’. 아무리 급해도 순서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 행정통합 기류가 거세다.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이 ‘통합 1호’를 다투고, 부산·경남은 찬성 여론 과반으로 탄력이 붙은 모양새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노’론이,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는 ‘바늘’론이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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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부산시장(왼쪽)과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2024년 6월 17일 부산시청에서 행정통합을 비롯한 현안을 논의하고 미래 도약과 상생 발전을 도모하려는 부산 경남 공동합의문을 들고 악수하고 있다. 이날 합의에 따라 같은해 11월 발족한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13일 경남도청에서 최종 보고회를 연다. 국제신문DB |
지역 소멸은 대한민국의 위기다. 수도권 일극체제가 큰 원인이다. 행정통합이 위기 해소책이라면 시도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을 만들겠다며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을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5극3특(수도·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중부·호남 5개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개 특별자치도) 균형발전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초 대전·충남 통합 메시지를 던졌고, 지난 9일엔 청와대에서 광주·전남 통합 문제를 논의했다.
민선 지방자치 30년을 보내고 새로운 지방정부 리더십을 세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여당이 특별법 추진으로 힘을 보태며 시·도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묻고 싶다. 주민이 과연 속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나. 주민 뜻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나. 혹여 있을지 모를 부작용과 부담은 무엇인가. 주민 참여와 눈높이가 기본 전제인 지방자치 판도를 바꾸는 일이다.
막스 베버의 ‘주술화(呪術化)’를 떠올리며 걱정하는 이가 늘어나는 이유다. 주술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에 의지하는 인간 행태다. 탈주술화는 주술의 극복이다. 주술을 덜어내며 세계는 근대 자본주의의 길에 들어섰다. 행정통합은 한 방법이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방망이라는 주술이어선 안 된다. 속도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과정과 방향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행정통합의 명분이 맞다고 하더라도 삶의 결정은 정치 권력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의 결정이어야 한다. ‘이렇게 좋은데 왜 안 따라와’ 하는 건 엘리트의 오만함이다. 당위성을 확보하고 명분을 축적하며 계단을 밟듯 나아가도 절차상의 하자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여지가 있다. 곳곳에 미처 생각지 못한 빈칸에서 갈등과 분란이 잉태한다. 발전주의 속성의 부작용이다.
더 들여다 보자. 행정통합으로 시너지를 높이자는 광역화 논리의 근거는 경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다. 세계가 국가끼리 경쟁에서 초광역권 도시 사이의 경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행정통합으로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해당 주민 삶의 질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문제가 도드라진다. 성장 주도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낳는다.
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과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등에서 대도시와 주변 지역이 주택 교통 도시계획과 쓰레기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기능적인 연합으로 광역화를 꾀하는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정치인이 주도하는 우리나라와 결이 다르다. 그러니 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두고 힘 겨루기가 생긴다.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하고 돈은 돈대로 들여도 갈등의 골을 메울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부산울산경남 특별자치단체 무산에 관한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 통합 의지가 가장 높았던 사례로 평가되나 지방정부 리더십 교체로 물거품이 됐다. 역대 정부치고 행정기구 개편을 추진하지 않은 예가 없으나 여의치 않았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 논리만으로는 어렵다. 주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더 어렵다.
그래도 부산·경남 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통합 찬성으로 여론 물꼬를 돌린건 성과다. 40여 차례 토론회를 거치며 통합 의미와 효과를 설득한 데다 다른 시·도의 통합 드라이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13일 오후 경남도청에서 최종 보고회를 열고 부산시와 경남도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통합 찬성이 과반인 여론조사 결과, 통합 기대 효과 및 필요성, 통합의 제도적 기반이 될 특별법안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두 시·도는 주민 의견 결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공이 박형준 시장과 박완수 지사에게 넘어간 셈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행정통합 특별법 국회 통과, 6월 통합 단체장 선출, 7월 통합단체 출범이라는 대전·충남이나 광주·전남 시간표가 현실이다. 부산시민과 경남도민 뜻을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시·도 주민도 냉정하게 실익과 부담을 따져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겠다. 우리 세대와 함께 미래 세대까지 아울러 상생과 발전을 위한 최선의 결론을 기대한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