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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은반 위의 클래식

김준희 고려대 외래교수

  • 김준희 고려대 외래교수
  •  |   입력 : 2026-02-01 18:39:4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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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은 기록이나 속도로 순위를 결정하거나 득점 경쟁, 혹은 상대 선수와 직접 맞붙어 승패를 가르는 종목이 아니라, 기술 수행의 완성도(기술점)와 예술적 표현을 기준(구성점)으로 한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평가가 결합된 점수 체계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 스포츠다. 또한 점프 스텝 스핀 등 주요 기술과 그 밖의 모든 움직임까지 음악의 흐름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음악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이해인 선수가 연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주 밀라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우리나라 여자 싱글 선수들은 모두 클래식 작품들을 택했다. 신지아와 이해인, 두 선수는 각기 다른 개성과 분위기의 음악을 선택했는데, 흥미롭게 네 곡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사랑의 설렘과 그리움, 유혹과 열정, 그리고 기다림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작품이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인 ‘사랑’이 자리한다.

신지아의 쇼트 프로그램 음악은 쇼팽의 ‘녹턴 c#단조’로, 영화 ‘피아니스트’(2000)에도 삽입돼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작품이다. 밤의 정취를 가득 담은 이 곡은 내밀한 감정을 전달한다. 신지아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편곡된 곡을 선택해 부드럽고 정제된 스케이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잔잔한 아르페지오 피아노 반주 위로 흐르는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은 깊은 밤의 조용한 고백 이후 기다림과도 같다.

신지아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에 맞춰 한층 더 폭넓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친다. 이 곡은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 ‘사랑할 수 있는 동안 사랑하라’에 바탕을 둔 피아노곡이다. 사랑의 시작과 설렘, 고조되는 감정, 그리고 잔잔한 여운까지 한 곡 안에 담아낸 ‘사랑의 꿈’은 음악으로 그린 사랑의 초상과도 같다. 도입부의 부드러운 선율은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중반부에서는 사랑의 열정이 풍성한 화음을 더해 펼쳐지며 애틋한 속삭임이 격정적인 고백으로 변한다. 다시 고요해지는 끝부분에서는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쇼팽의 녹턴이 조용한 고백이라면, 리스트의 ‘사랑의 꿈’은 조금 더 용기를 낸 프러포즈와 같다.

이해인의 쇼트 프로그램 음악은 현대 작곡가 크리스토퍼 틴의 ‘세이렌’이다. 이 곡은 명확한 선율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던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메시지를 아카펠라로 신비롭게 그려낸다. ‘세이렌’은 시종일관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깊은 바다의 파도처럼 반복되며 아름다움과 위험이 공존하는 세이렌의 이중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해인의 연기는 물속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흐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매력으로 모두를 유혹하는 세이렌으로서의 서사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해인이 프리 스케이팅 음악으로 선택한 곡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다. ‘하바네라’로 대표되는 이 음악에는 당당함과 열정, 그리고 위험한 매력이 함께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에 빙판에 쓰러지는 장면은 피겨 역사상 최고의 엔딩이라고 불리는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카타리나 비트의 연기를 연상시킨다. 자유롭고 당당한 여성의 강단있는 사랑을 보다 강렬한 색채로 드러낸 이 음악은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해인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와 같이 은반 위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선수들의 연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한 이들의 무대는 경기 속에 담긴 예술적 순간들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하며, 피겨스케이팅이 높은 예술성을 지닌 스포츠임을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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