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길 잃은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비유 중 하나이다. 죄를 짓고 있거나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의 ‘길을 잃었다’는 현대에서 인간 존엄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길을 잃었다. 예전부터 눈여겨본 한 건축가가 있다. SNS ‘진짜공간’에서 사라진 도시의 흔적, 이를테면 타일로 마감된 주택 담장이라든지, 높은 음자리표를 닮은 옛 방범창 사진 등 게시물에서 건축가가 사랑하는 공간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기존 건축가와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탐험하는 그 건축가는 급변하게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고 행복하게 헤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너희 건축가들은 길을 잃지 않았느냐 묻는 듯했다.
길을 잃었다. ‘진짜공간’의 홍윤주 건축가는 최근 ‘담장 없는 도시 : 아파트 단지 공공보행권 회복 및 소셜 스트리트 조성 방안’이라는 정책 제안을 ‘소통24’에 올렸다. 점점 거대 요새가 되어가는 아파트 단지로 인해 현대 도시인들이 길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개발 때 공공 도로가 단지에 포함될 경우, 해당 구간은 ‘도시 보행망의 필수 요소’로 정의하여 완전 개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해외와 달리 거대 단지로 개발되고 있는 한국의 아파트는, 단지 규모와 화려한 브랜드명, 입지에 따른 계급화 심리와 이웃에 대한 사회적 배제, 폐쇄적 커뮤니티로 사회공동체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만이 원인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홍윤주 건축가가 말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길은 무엇일까. 목적지에 가장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수단, 즉 ‘이동’의 선택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어린이 노동자 고양이 등 도시의 동료 시민과 만나서 인사하는 ‘접촉’의 길만을 말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양한 이동을 하면서 다양한 삶과 만나고, 길 양쪽의 공간들이 다양한 삶과 상업과 문화의 취향과 결합할 수 있는 연결 기회의 상실이자 이를 만끽하고 살아야 할 도시 삶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 주거 형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로부터 대량 청약과 분양권 전매를 통한 차익 실현과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급이 시급했던 우리 사회의 표준 주거모델은 양적 확산을 지속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차별화와 고급화로 브랜드화가 시작되었다.
이때 아파트의 편의성과 함께 자산적 가치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입지였다. 입지는 근린 생활권과의 연결, 교육과의 연결, 직장과의 연결에서 시작되어 문화와의 연결, 자연과의 연결 등 시대와 세대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연결을 찾는다. 그리고 점점 확장되는 단지에서 카페 공원 문화시설 등 생활 편의시설을 자체적인 내부 연결로 해결하고, 입주자 규모에 기반한 강력한 수요력으로 단지 외부의 상업과 문화시설까지 강하게 빨아들이는 외부 확장력까지 작용하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가깝다 할지 블랙홀에 가깝다 할지 정의마저 내리기 힘들다. 그리고 이제 자본으로는 단지에 넣을 수 없는 한강과 바다 등 자연환경을 입지와 가장 강하게 연결해 사유화하려는 전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과 함께 부산시 행정에 대해 시민이 비토하는 가장 큰 목소리 중 하나는 ‘일자리는 내보내고 아파트만 짓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이기대에 건설될 아파트에 대한 난개발 논란이 크다. 해안 경관과 생태환경의 훼손과 조망권 독점 등 공공 이익 침해가 가장 우려된다. 건설사 특혜 논란도 국무위원의 위장전입처럼 이제 빠지면 섭섭할 단골 메뉴다. 아파트 특유의 폐쇄성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만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시민은 너무도 많이 학습되어 있다.
옛 부산항 컨테이너 항만이 이전하고 북항을 매립하고 철도기지창을 옮기는 등 지난 100년의 사회적 기능을 다한 천혜의 아름다운 부산의 땅이 다시 길을 찾고 있다. 물론 아파트를 지어야 사업성이 나온다는 의견도 백번 양보해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어떤 아파트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이상 조직이 우리 몸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영양분만을 빨아먹고 커지는 것을 무엇이라 지칭하는지 잘 알고 있다.
도시와 건축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우리 사회 아파트 단지의 사회적 문제와 도시 네트워크 연결성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공공이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우선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50년간 이어진, 한국사회의 투기와 계급사회의 욕망이 그대로 응축된 아파트 단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1인 주거가 40%에 육박하고 있다. 주거에서 사회성을 찾지 않으면 모든 개인은 파편화되고 남는 것은 욕망과 배척과 혐오이다. 또 길을 잃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