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은 일본 보수의 심장부다. 이토 히로부미부터 아베 신조까지 역대 총리 9명을 키웠다. 47개 일본 광역단체 중 권력 1인자를 배출하지 못한 곳이 숱하다. 야마구치현을 우익의 본산으로 만든 인물이 메이지유신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1830~1859). 하급 사무라이의 아들인 그는 해외 열강의 군사력에 감탄해 유학을 결심했다. 밀항을 위해 미국 군함에 몰래 탔다가 붙잡혀 14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그때 집필한 ‘유수록(幽囚錄)’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배우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와 조선 만주 필리핀을 정복하자는 제국주의적 세계관이 담겼다. 요시다 사상은 정한론·대동아공영론으로 발전해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출소한 요시다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할 주역을 양성했다. 초대 일본 총리인 이토와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가 그의 제자다.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 전 총리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장본인 가쓰라 다로 전 총리 역시 요시다에게 배웠다. 지금도 야마구치현 출신들은 일본 최대 파워엘리트 집단으로 꼽힌다. 일본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는 중대사를 앞두고 늘 요시다 묘를 찾았다. 아베가 ‘강한 일본’과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추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 메이지유신 바람이 불 때마다 주변국들은 불안해 한다.
요시다를 존경한 아베에 이어 ‘여자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18일 총리로 재선출됐다. 외교안보정책은 아베보다 더 강경하다. 살상 무기의 해외 수출 허용과 국가정보국 창설 같은 강경 우파 정책을 추진 중이다. 아베가 소망하던 ‘헌법에 자위대 명기’도 공약했다. 다카이치 재집권으로 중일 대립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의 일본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다카이치 지지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중국에 몸을 낮추고 양보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분석한다. ‘사나에노믹스’로 불리는 다카이치의 경제정책은 국내 산업계를 긴장시킨다. 우리의 주력인 반도체·배터리·방위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대규모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부국강병을 위해 침략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요시다. 일본은 요시다를 계승한 아베에게 열광한 것처럼 아베를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는 다카이치의 자민당에 중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몰아줬다. 당분간 다카이치에겐 거칠 것이 없다. 일본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경제안보의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