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와 해운 대기업 본사 이전, 북극항로 시대 개막으로 부산은 해양수도를 향해 도약하고 있다. 도시 위상이 높아지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바로 식수 문제다. 도시의 품격은 거대한 인프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마시는 물 한 컵이 ‘안심’이 될 때 비로소 살고 싶은 도시가 된다. 맑은 물은 복지이자 생존권이며, 글로벌 해양수도의 기본이자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다.
부산은 물의 도시임에도 전국 특별·광역시 중 수질이 가장 ‘나쁜’ 낙동강 하류를 원수로 사용한다. 원수 수질이 나쁘다 보니 고도정수처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 부산 시민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수도 요금을 부담한다. ‘더 내고도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식수 문제는 환경 이슈를 넘어, 공공서비스의 신뢰와 시민 삶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1991년 페놀 유출 사고를 통해 식수 안전이 무너졌을 때의 고통과 신뢰 회복의 어려움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후 35년간 정부가 22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수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시민의 불신이 여전한 이유는 바로 낙동강 하류 원수가 가진 구조적 한계와 계절적 변동성 때문이다. 수질 악화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수치상 “괜찮다”는 설명은 더 이상 시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난해 물환경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물금·매리 취수장의 수질 지표인 총유기탄소량, 화학적산소요구량, 총대장균군 등은 식수원으로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특정 시기의 수질 악화는 ‘연평균’이라는 수치에 가려져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괜찮다’가 아니라 ‘언제나 안심할 수 있다’는 확신이며, 이 요구는 결코 과도하지 않다.
나쁜 원수는 정수 비용을 높일 뿐만 아니라 발암물질인 총트리할로메탄(THMs) 등 소독 부산물의 위험까지 키운다. 이제는 ‘처리로 버티는 물’이 아니라 ‘처리 부담이 낮은 좋은 원수’ 확보로 정책 중심을 옮겨야 한다. 좋은 물은 정수장이 아닌 취수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산과 동부경남의 맑은 물 확보는 520만 명 주민의 건강과 직결된 과제다. 인구로만 따져도 대한민국의 10%가 넘는다. 국가데이터처의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부산과 경남이 암 사망률 1위를 번갈아 차지하고 있으며, ‘2023년 생명표’ 자료에서는 부산이 서울보다 기대수명이 2.4년 짧다는 가슴 아픈 통계도 접하게 된다. 물론 원인을 식수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식수 문제를 가볍게 넘길 일도 아니다. 물은 건강의 문제인 동시에 도시 경쟁력의 문제다. 기업은 인재가 머무는 곳에 투자하고, 인재는 삶의 질이 보장되는 곳에 정착한다. 청년이 도시를 선택할 때, 집값과 일자리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서 가족과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 질문의 바닥에 물이 있다. 결국 맑은 물은 부산의 미래를 지키는 중요한 인프라다.
해법은 분명하다. 현재 추진 중인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창녕·의령의 강변여과수와 합천 황강 복류수 90만 t을 매일 취수해 동부경남과 부산에 공급하는 것이다. 물은 특정 지역의 소유물이 아닌 국가의 자산이다. 전체 공급량의 53%는 동부경남 주민에게, 나머지 47%는 곧 한 식구가 될 부산 시민에게 제공된다. 이제는 손익계산을 넘어 동남권의 미래를 위한 대승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사업은 물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 함께 더 안전한 물 체계를 만드는 일인 만큼, 모두의 통 큰 합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지역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사업인 만큼 국가적 차원의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앙의 조정력과 객관적 기준이 분명해야 지역 간 갈등이 줄고 합의가 빨라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올해 정부 예산안에 ‘낙동강 유역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사업’ 설계비 19억 2000만 원이 반영되고, 최근 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참여하는 ‘정부 주도 상설협의체’ 구성까지 추진되면서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지역 이해관계를 풀고 지속 가능한 물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자 대통령만이 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고대부터 치수는 통치의 핵심이었다. 식수는 빈부격차를 넘어 누구나 마시는 가장 평등한 공공재다. 이 기본적인 안전망이 흔들린다면 국가는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부산·경남 시민은 불안과 높은 요금을 견디며 35년을 기다려 왔다. 이제 정부가 그 기다림에 답해야 한다. 글로벌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이라면, 도시의 품격도 세계 수준이어야 한다. 결국 해양수도의 경쟁력은 ‘맑은 물’이라는 기본권 위에서 완성된다. 부산의 미래는 항구뿐만 아니라, 시민의 수도꼭지에서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