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사망했다. “죄송하다”는 짧은 유서 옆에 놓인 시신은 ‘죽어서야 발견되는’ 사회안전망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정부는 세 모녀의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어려운 이웃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고 약속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가난한 죽음’이 사라졌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비극이 줄지 않는 원인은 다양하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잔인하다고 질타했던 ‘복지 신청주의’가 그중 하나다. 빈곤층이 기초생활보장 자격을 취득하려면 직접 가난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 또는 ‘빈곤’ 낙인이 두려워 국가 도움을 거부하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십상이다.
지난 18일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일가족 비극이 단적인 예다. ‘위기가구’였던 김모(34) 씨는 어린 네 자녀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영정 사진의 아이들은 7세·5세·3세 여아와 5개월 남아였다. 더 안타까운 대목은 경고음이 수차례 울렸는데도 아이 넷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첫째 아이의 담임 교사는 아이가 무단 결석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울주군은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자 긴급 복지 지원금을 지급했다. 또 김 씨에게 기초수급자 신청을 권고했으나 서류가 접수되지 않았다. 현재 복지제도에선 공무원이 직권 신청하려 해도 당사자가 금융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2024년 한해 직권신청을 통한 생계급여 수급이 198건에 그친 이유다.
복지체계 문턱을 낮추고, 직권신청을 확대하고, 야간·주말·24시간 돌봄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많이 나왔다. 반면 입법과 예산 편성은 늘 비극의 속도보다 굼떴다. 정부는 뒤늦게 ‘신청주의’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공무원이 위기 징후를 포착하면 당사자 동의가 없어도 재산과 소득을 확인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신청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울산 네 남매의 빈소에 놓인 5개월 막내의 젖병이 애달프다. “그곳에선 부디 배고프지 말고 살라”는 기도는 허무하다. 그것은 산 자가 죄의식을 덜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일뿐이다. 현실에 발 디딘 이곳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인구 비율)은 15%에 이른다. 열 집 중 한 두 집은 늘 가난의 언저리에서 신음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찾아가는 복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면 울산의 비극은 한 발 더 나아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하고 있다.
이노성 미래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