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실을 가득 채운, 클래식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빛이 반짝이는 학생들에게 명곡을 한 곡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개강 첫 주, 경칩 무렵에는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개구리’를 꺼내고,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멘델스존의 ‘봄노래’를 들려준다. 신록이 짙어지는 늦은 봄에는 슈만이 한창 왕성하던 시기에 남긴 교향곡 ‘봄’을 소개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빼놓지 않는 곡이 있다. 우리 가곡 ‘사월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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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이 활짝 핀 모습. 국제신문DB |
‘사월의 노래’는 계절을 소재로 한 작품 중 따뜻하고 세련된 은유의 언어로 사랑받는 곡이다. ‘목련꽃 피는 언덕에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라는 첫 구절은 이 곡이 주는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순수의 시대가 주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박목월 선생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팍팍한 시절 교정의 목련 나무 아래 책을 읽는 여학생들을 보고 이 글을 지었고, 김순애 선생 역시 혼탁한 시대에 피아노도 없는 방에서 곡을 써내려 갔다고 전해진다.
이 곡의 전반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목련’이다. 목련은 4월을 시작하는 꽃으로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봄의 정서를 담고 있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 시기에 피는 목련은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이다. 조금은 성급한 듯 얼굴을 내미는 목련은 꽃이 피기 전엔 무성한 털이 감싸고 있고, 꽃샘추위를 견디며 꽃잎을 드러낼 땐 그 넓고 화려한 잎의 모양이 연꽃을 닮아 ‘나무에서 피어난 연꽃’이라고 하여 목련(木蓮)이라고 부른다.
가사 속에 등장하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계절의 감각에 문학적 깊이를 더해준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친구인 빌헬름에게 설레고도 안타까운 감정을 편지로 풀어내는데, 검은 눈동자의 매력적인 샤를로테에게 푹 빠진 베르테르의 애틋한 사랑의 슬픔은,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시절 괴테의 격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른 봄 공기를 견디며 먼저 피어나는 목련의 꽃잎은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계절의 기운을 드러낸다. 베르테르의 사랑 또한 아직 차가운 계절의 여물지 않은 감정처럼, 깊이를 갖추기 전 먼저 피어난 미완의 청춘과도 같다.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항구와 바다 이미지는 시선을 환기시킨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공간, 그리고 그 끝을 쉽게 알 수 없는 바다 이미지가 감정의 확장을 불러온다. 2절에서는 조용히 글을 쓰는 쪽으로 옮겨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시간에서 이제는 자신의 말을 꺼내는 순간이다. ‘긴 사연의 편지’는 조금은 늦게 도착한 감정,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되돌려 보내는 것일까? 답장을 쓰는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넌지시 건네는 조심스러운 마음인지.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부는 휘파람은 어쩌면 조금은 새로운 또 다른 설렘일지도 모른다.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라는 구절에서, 바다의 여운을 안은 장면은 자연스럽게 산으로 이어진다. 바다와는 대비되는 정적인 산의 이미지는 화자의 안정된 마음을 표현한다.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본 별은 가까운 공간을 벗어나 더 먼 곳으로 더 넓게 감정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인 별빛과 함께 고요한 마음의 안온함을 나타낸다. 후렴 ‘빛나는 꿈의 계절’과 ‘눈물 어린 무지개’는 풍요롭지 못한 시절 탄생한, 섬세한 사유와 감수성으로 길어 올린 이 곡의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정갈하고도 소박한 단어들의 어울림이 이렇게 뛰어날 수 있을까? 곡의 전반적인 선율은 완만한 긴장과 이완을 담고 있고, 절제미를 담은 복잡하지 않은 리듬과 화성도 역시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4월의 노래’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70여 년이 흘렀다. 최근에는 목련이 3월에 먼저 피고 지는 일이 잦아지며 4월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4월은 여전히 빛나는 계절로 우리 곁에 머문다. 조용히 흘러가는 눈물 어린 무지개와 같은 시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