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으로 탄핵되고 내란 혐의로 재판까지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상징인 국회를 물리적인 힘으로 마비시키려 했다는 국헌 문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국회가, 특히 다수당이 입법 폭주를 할 땐 어떤 제동장치가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보는 요즘이다.
정치인은 잘못을 하고도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극렬 지지자를 국민이라고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금 더 뻔뻔한 이는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고 오히려 의기양양하다. 정권이나 정당이 잘못하면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까지 부조리를 지켜봐야 하는 고통과 분노의 시간은 길다. 국민 혈세를 동원한 ‘표(票)퓰리즘’으로 과오를 희석시키거나 생업에 바빠 쉽게 잊어버리는 국민의 ‘단기 기억상실’에 기대를 건다. 철저하게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한다.
국회 과반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30일 소위 ‘공소취소 특검법’이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법안 발의를 자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 의혹을 받는 대장동·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을 특검이 가져와 재수사는 물론 공소취소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기에 공정성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이 대장동·위례 신도시 특혜 사건 항소를 포기한 데 이어 민주당은 ‘조작기소 국정조사’를 하며 공소취소 빌드업을 해왔다. 민주당 주장대로 윤석열 정부 때 검찰 수사가 조작됐다면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면 되고, 재판 결과가 부당하면 재심을 청구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이 ‘사법 3법’ 개혁이라며 사법 체계를 흔들 때부터 삼권분립 훼손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많았다.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 법왜곡죄(형법 개정안),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등은 모두 위헌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이 멈춰선 이 대통령의 재판과 수사를 방어하려는 ‘정치 입법’이 아니냐는 의혹 섞인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공소취소 특검법처럼 모든 재판과 수사를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조작기소 국조를 통해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가 주장했던 ‘연어 술 파티 회유’를 고리로 대북송금 수사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성태 쌍방울 회장을 비롯해 당시 교도관 등 증인들 입에서 “연어회 술 파티는 없었다”는 일관된 진술이 나왔다. 또 인근 편의점에서 쌍방울 법인카드로 소주를 구매한 임원은 ‘(연어 술 파티 회유를 위해) 수원지검에 소주를 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당시 검찰 수사로 괴로워 자신이 마셨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지사와 민주당이 수 차례 날짜까지 변경해가며 주장했던 ‘연어 술 파티’ 사건의 개연성이 극히 낮은 정황들이다.
거센 비판에도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에 공소취소 특검법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TF는 ‘유일하게’ 연어 술 파티를 주장한 이 전 부지사의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근거로 술 파티가 있었다며 특검법 발의에 맞춘 듯한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정작 대검은 사건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 징계를 청구하면서도 연어 술 파티 의혹은 쏙 뺐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민은 공소취소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국민이 공소취소 논란을 모른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지만, 국민이 잘 알지 못하면 잘못된 일이라도 추진하면 된다는 말인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함을 감추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쯤 되니, 국회의 입법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 ‘입법왜곡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논리대로 검찰·판사의 기소권·재판권 남용을 막기 위해 법왜곡죄가 필요하다면 국회의원의 입법권 폭주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뜻에 반하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국가 이익을 훼손하는 왜곡된 법안을 낸 국회의원을 처벌하자는 취지다. 발의한 의원은 물론 찬성표를 던진 의원까지 입법왜곡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입법 후 실제로 부작용이 드러나면 소급해서 사법적 책임을 묻고, 실질적 피해에 대해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신성한 헌법기관의 지위를 부여하고 입법권한까지 허락한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한 공익을 극대화하라는 취지다. 국회 과반을 점하면, 다수결이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타락’이다. 굳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권력 남용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서늘한 마지막을 늘 상기하기 바랄 뿐이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