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산골에 있는 시인의 집으로 놀러 갔다. 마당 한 귀퉁이에 연못이 있었다. 지름이 2미터도 안 되는 미니 연못이었다.
이 작은 연못에서 해가 지기만 하면 개구리가 요란스럽게 울었다.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도시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소리라 오히려 반가웠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모내기를 하는 논에 들어갔다가 거머리에 물려 질겁했던 일, 논바닥에 기어다니는 우렁이를 잡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개구리 덕분에 떠오른 추억이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순간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인데,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밖으로 나간다면 행복할까?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불행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큰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다른 개구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면 우물을 뛰쳐나온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내가 판사의 꿈을 안고 법대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고 재수할 때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부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신문에서 간부사원 후보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어느 화학공장에 들어갔다. 이론 교육을 몇 주 받은 뒤에 공장으로 현장 실습을 하러 나갔다. 독한 화학 약품 냄새가 잔뜩 풍겼다. 사출기에서 찍혀 나온 플라스틱 통을 깔끔하게 다듬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플라스틱 통에 붙어 있는 거스러미를 작두로 자르고 있을 때, 삼촌뻘 되는 경력사원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너 여기에서 평생 썩을 거냐?” “간부사원으로 우대해 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요.” “그러지 말고 대학에 가거라. 고졸 출신은 대우가 안 좋아.”
그분은 고졸 출신인데 대학에 못 간 것이 후회된다며 진심으로 충고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약한 내가 독한 약품 냄새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길로 사표를 내고 3수를 한 끝에 교육대학에 갔고 결국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 아저씨의 충고로 내 인생길이 확 바뀌어 버렸다. 그 공장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살아왔을까?
그래도 초등학교 선생님 일이 내 적성에는 맞았다. 초등학교 교사로 5년쯤 근무했을 때 난데없이 어느 사립초등학교에서 제의가 왔다. 그 학교에 한 자리가 비었으니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 재능을 알아보고 연락을 준 것은 고맙지만 재단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선배들만 있는 학교에 가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당시는 공사립 학교의 인사이동이 없을 때라 사표를 내고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었다.
일주일 고민한 끝에 결국 사표를 내고 우물을 뛰쳐나갔는데 내 선택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학교에 근무하면서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아 지병을 고칠 수 있었고 몇 년 뒤에는 내 집까지 장만했다.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서울 사립초등학교에서 초빙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심한 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 가서 어떻게 살아갈지 불안했다. 결국 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자고 결정했다. 만약에 그때 우물 밖으로 뛰쳐나갔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사립학교에서 14년을 보내고 나니 내 앞에 또 두 갈래 갈림길이 나타났다. 공사립 교원의 인사이동이 허용되어 공립학교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립학교로 나갈 것인가,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였다. 몇 달 고민 끝에 사표를 쓰고 나와 글쓰기 학원을 차렸다. 집사람이 전업주부였으니 소심쟁이 나로서는 대단한 용단이었다. 우물 밖으로 뛰쳐나온 내가 다행히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지는 않았고 동화교실까지 열어 후진 양성에 일조했으니 보람을 느낀다. 만약 그때 학교라는 우물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내 인생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