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까운 친척 어르신께서 연락을 주셨다. 필자가 중고교를 다니던 시절, 명절 때 오시면 요즘 학생들은 뭐가 흥미로운지, 필자의 적성과 진로계획을 물어보시곤 하셨다. 요즘은 이런 질문이 흔하고, 때때로 선을 넘는 경우도 있어서 ‘명절 금기어’라는 우스개 글이 있을 정도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아서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 느지막이 얻은 손주를 돌보신다는 말씀 끝에 툭 던지신 질문은 “앞으로 ○○이가 살아갈 AI시대에는 어떻게 진로를 준비해야겠는가?”였다.
연중 이맘때면 미국 대학들은 졸업식을 한다. 졸업 연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인생의 정수를 전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스티브 잡스나 J.K. 롤링의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된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를 비롯한 여러 연사들이 AI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다가 졸업생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다. AI로 인해 이미 좁아진 취업의 문 앞에 선 졸업생들에게, AI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는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AI의 진화와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로 데이비드 하사비스를 들 수 있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KAIST 특강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미션을 “지능이 무엇인지 알아낸 다음, 그것을 통해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당시에는 다소 원대한 구호처럼 들렸지만, 2024년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으면서 새롭게 조명되었다. 즉, 해결할 모든 문제로 단백질 연구와 수학의 난제를 언급했는데, 단백질 연구가 성과를 내면서 수학 난제나 물리학과 화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AI가 인간의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올 ‘절대적 도구’가 될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AI라는 절대반지에 짓눌린 골룸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의 통제력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마침 이달 초 국립부산과학관에서 개최된 한국영재학회 학술대회의 주제는 ‘AI시대의 영재와 인문학’이었다. 특히 과학영재교육에서 과학 연구 역량이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앞으로는 인류를 위해 어떤 연구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순간에는 과감히 ‘멈춰야 하는지’까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기조강연이 큰 호응을 얻었다. AI의 성능이 인간을 압도할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원자핵이 분열할 때 질량이 줄어들면서 큰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것은 과학적 연구 성과이지만, 전례없이 가공할 위력의 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인식하면 연구의 방향을 멈추거나 통제하는 고뇌가 필요하다. AI개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AI는 모든 개인이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AI 활용소양이 요구된다. 이러한 개인 차원의 준비와 더불어 사회 전반의 논의와 합의도 필요하다. AI 활용에 따라 경제적 부가 일부에 집중되고 개인의 가치가 소외될 위험이 크다. 최근 산업계에서 겪고 있는 기술 혁신에 따른 이익 배분 갈등과 진통은 AI 확대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사회적 혼란의 축소판이라 보고 선제적인 제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친척 어르신의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할 깜냥은 안되는지라, 일론 머스크가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한 대답을 인용했다. 앵커는 “AI가 발전하는 세상에서 당신의 자녀가 진로를 묻는다면 뭐라고 조언하겠는가”라고 물었다. 평소 자신만만한 머스크지만 한동안 고뇌한 끝에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답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대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유능함의 척도로 여겨왔던 많은 일들을 너무나 쉽게 해내는 인공지능을 목도한 지금, 그것과 경쟁하기보다는 인간 고유의 목적과 가치와 행복을 찾는데 잘 활용하라는 조언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