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땐 봄만 되면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초등학교 앞으로 왔다. 종이상자에 빽빽하게 들어찬 병아리들이 모가지를 길게 빼고 삐악거리면 하교하던 아이들이 그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나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병아리처럼 빽빽하게 모인 아이들 틈에 끼어 한참 동안 그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손독이 올라 죽는다며 아저씨는 만지지 못하게 했지만, 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일 년에 단 한 번만 왔고, 그날이 지나면 다시 봄을 기다려야 했다.
병아리는 한 마리에 오백 원이었다. 일주일 용돈이 천 원이어서 돈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선뜻 병아리를 달라고 하지 못했다. 같은 반 친구가 병아리를 데려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잘 자랐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만 했다.
“안 살 사람은 비켜.” 아저씨는 구경만 하는 아이들을 뒤로 쫓고 새로 모여든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들였다. “자, 이렇게 예쁜데도 안 살 테냐?” 아저씨는 종이상자 안으로 손을 푹 집어넣어 병아리 몇 마리를 무자비하게 움켜쥐었다. 그러곤 높이 들어 올렸다. 날개가 붙들린 병아리들이 허공에서 더 크게 삐악거렸다. 병아리들은 아주 건강해 보였다. 친구가 옆에서 절대 속으면 안 된다고 속닥거렸다. “저 아저씬 중학교 앞에도 가는데, 우리 병아리만 죽은 게 아니야. 언니 친구들이 산 병아리도 다 죽었다니까? 언니들이 저 아저씬 사기꾼이랬어.”
나는 병아리가 아저씨와 살면 건강하게 자라 닭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저씨가 해마다 저렇게 많은 병아리를 데려오는 거라고.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병아리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일 년을 기다리면 저 병아리들이 낳은 병아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며칠 뒤 아저씨가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종이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병아리가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작은 새들이 종이상자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병아리보다 훨씬 작고 참새보다 색이 더 짙었다. 아저씨가 이건 메추리라고 알려주었다. “메추리알 할 때 그 메추리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맞다고 했다. 나는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세상에 이토록 예쁜 생명이 또 있을까? 메추리는 너무 작아서 만질 수 없었다. 내 손독이 올라 죽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만져 봐라.” 아저씨가 말했다. “만지면 죽는다면서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얜 안 죽어.” 아저씨가 대답했다. “안 죽어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아저씨는 다시 한번 장담했다. “그래, 얜 병아리랑은 달라. 불사조처럼 튼튼하지.” 그 말을 듣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주머니에 구백 원이 있었는데 메추리는 오백 원이 아니라 천 원이었다. 아저씨가 백 원을 깎아주어서 한 마리를 받아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왔다.
퇴근한 아빠가 메추리를 보더니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빈 꿀단지에 뜨거운 물을 붓고 광목천으로 감쌌다. 단지 뚜껑 위에는 천을 우산처럼 한 겹 더 덮어주었다. 그걸 메추리 집에 넣어주자 메추리가 엄마 품처럼 그 아래를 파고들었다. “너무 어린 것을 데려왔구나.” 아빠는 물이 식을 때마다 다시 물을 끓여 갈아주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메추리가 죽어 있었다. 식은 꿀단지 옆에 축 늘어져 있었다. 분명히 아저씨가 불사조처럼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뼈가 부러질까 봐 나는 작고 연약한 메추리를 조심스럽게 가슴에 안았다. 아끼는 보물상자를 가져와 안을 비우고 솜을 폭신하게 깔았다. 메추리를 그 안에 넣고 아파트 마당으로 나갔다. 삽으로 땅을 파는데 눈물이 나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많이 만져서였을까? 그냥 아저씨가 키우게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나? 일 년만 기다리면 다시 볼 수 있었을 텐데.
메추리알 할 때 메추리. 나는 그 후로 메추리알을 먹지 못했다. 메추리알만 보면 내가 묻어준 메추라기가 떠올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