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화단에는 껍질이 술을 마신 내 얼굴처럼 붉은 소나무가 여남은 그루 자라고 있다. 키가 2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고 세월의 흔적 같은 구불구불한 가지는 운치를 더한다. 소나무는 유월이라 송홧가루를 다 날려 보내고 까까머리에서 머리가 자라듯 새순을 올리며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의 일터인 작은 갤러리 앞의 저 소나무가 아름답다.
매일 보다시피 하는 소나무를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나무는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산에서 도시로 옮겨와 관청에서 관리하는 나무다. 우리는 관공서 앞이나 새로 조성된 공원, 아파트 정원과 거리의 교차로 주변에서 이식된 소나무를 흔히 본다. 태풍에 쓰러지지 말고,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하나같이 지지대를 하고 서 있다. 이 모습을 보면 타향살이의 설움도 묻어나는 듯하다.
소나무를 가까이하고픈 사람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로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나무는 새들이 날아와 쉬도록 자리를 내주고 지나가는 바람도 머물게 한다. 어느 무덤가에서 망자를 위로하던 소나무가 이젠 도시로 옮겨져 사람이 가진 성선설의 정서를 지키려 한다. 이게 이식된 소나무의 삶으로 본다. 다만, 도시에서 세상의 삶을 위해 서 있는 모습이 나의 기분에 따라 서러울 뿐이다.
자연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많다. 누구는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를 그리고 누구는 국화를 좋아하여 국화에 대한 시를 쓰고 또 누구는 동백을 좋아하여 동백에 관한 노래를 한다. 유월의 모란 바람 바다 운무 노을 무지개 새소리 시원한 폭포 등 수없이 많다. 나는 그중에서 객지로 나간 자식을 문밖에 서서 기다리는 아버지 같은 소나무가 좋다. 어릴 적부터 늘 가까이 있었기에 친근해서 좋다.
아버지는 6·25전쟁으로 불타버린 집을 선산의 소나무를 베어다가 지었고 나는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자랐다. 시골집 뒤로 오십 보만 가면 뒷동산이 있고 거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보릿고개엔 소나무 가지의 속껍질을 갈비처럼 뜯어 먹기도 했고, 여름엔 산에서 불어오는 솔바람 맞으며 더위를 식혔다. 가을 추석이면 송편을 빚기 위해 솔잎을 땄으며 겨울엔 소나무 아래 떨어진 솔방울과 삭정이를 주워 땔감으로 사용했다.
함박눈을 이기지 못해 언 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 들으며 마음 아파하고 낮엔 산비둘기 밤엔 소쩍새가 소나무에 앉아 우는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애틋한 여운을 주어 가슴에 간직하고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어 듣는다. 눈을 감고 떠올리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언제였던가 바람이 춤추고 소나무가 차다는 통도사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를 걸으며 안식을 찾고 세속의 상념을 버리는 연습도 했다.
소나무는 늘 푸르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은 우러러보게 하고 솔향기는 상쾌하여 머리를 맑게 한다. 소나무는 우리 문화의 아이콘으로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다. 지금, 이 소나무가 늘 푸르지 못하고 신록의 계절에도 갈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어 가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금수강산이 병들어가는 것에 애가 탄다. 우리는 소나무가 짧은 생을 살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는 나라에서 철저한 방제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산에 소나무가 없어진다면 도시로 옮겨올 소나무조차 없어져 가까이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 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성어다. 속뜻은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한’다는 의미다. 도시 곳곳에 소나무가 무성하면 사람이 잘되어 기뻐한다는 뜻으로 송무인열(松茂人悅)의 삶은 어떨까!
창밖으로 적막하게 바라보면 나의 삶도 소나무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고향 떠나 도시에서 더불어 살아왔고 살아갈 삶이다. 애오라지 나 자신에게 저 소나무처럼 대가 없이 세상을 위해 베풂의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나에게 타향살이의 애환을 그리게 하는 도시의 소나무가 새순을 올리며 아름답게 다가오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