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조기 구축과 함께 제2 반도체 클러스터를 호남 지역에 추가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계획은 아니지만,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정책 방향에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계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호남에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더라도 기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그대로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방에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해서 용인 클러스터의 규모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제는 단순히 공장을 어디에 건설할 것인가를 넘어,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와 인프라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가장 큰 의문은 전력과 용수를 과연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였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가 최종 계획대로 삼성전자 6개 팹과 SK하이닉스 4개 팹, 총 10개의 반도체 팹으로 완성될 경우 필요한 전력은 약 15GW, 산업용수는 하루 107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용수는 정부가 단계적인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최종적으로 하루 107만 톤에 이르는 물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구체적인 해답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전력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15GW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를 발전설비로 환산하면 1GW급 원자력발전소 15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론 실제로 용인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전력은 지방에서 생산해 수도권으로 송전해야 한다. 이를 송전설비 측면에서 보면 문제의 규모는 더욱 분명해진다. 15GW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려면 345kV 초고압 송전선로를 대규모(345KV 2회선 기준 15 루트)로 추가 건설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밀양 송전선 건설 과정에서 주민 반대와 사회적 갈등이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를 경험했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송전선과 변전소 건설은 지역사회의 반대에 직면했고, 그 결과 전력망 확충은 계획보다 크게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RE100이다. 반도체는 거의 모든 첨단산업의 핵심 부품이다. 이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가격과 품질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공급망 전반으로 확대하면서, 반도체 생산에도 탄소중립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사실상 필수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공장의 입지 선정 기준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부지와 인력, 교통 여건이 입지의 핵심 요소였다면, 이제는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풍부한 태양광과 풍력 자원을 보유한 호남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밀집 지역은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입지로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의 반도체 산업 전략은 공장만 어디에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탄소중립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AI와 반도체 산업 육성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산업 육성 계획만 발표한다고 반도체 공장이 자동으로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전력망과 용수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도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용인과 호남을 아우르는 반도체 클러스터 전략을 추진한다면, 공장 건설 계획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과 용수 확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로드맵을 국민에게 함께 제시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성패는 팹의 개수가 아니라, 그 팹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에너지와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