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물살을 가르며 살아내느라 용을 쓴 게지. 참치 눈은 깊은 바다를 닮았는데 참치 눈물주는 붉다. 붉게 가라앉은 마지막 한 모금이 목을 넘어가며 아찔하게 파고 들었다. 뜨거웠을 한 생이 내게로 들어와 몸부림친다.
작은 상자 텃밭에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아침이면 미주알 고주알 작물에 물을 주며 한 번은 시를 읽고 한 번은 음악을 듣는다.
하나는 파가니니라 이름 붙이고 또 하나는 샤갈의 여인들이라 불러주자 그림같은 토마토가 음악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들이대고 익지 않은 어린 토마토를 만지는 새벽이면 내 눈빛이 먼저 붉게 익었다.
시멘트로 덮인 마당, 갈라진 틈으로 질경이가 소복하게 자리를 잡았다. 어디서 왔는지 민들레가 피더니, 강아지풀도 살랑거린다. 화분에 자라는 화초들과 달리 마당에서 살아가는 풀들은 손이 가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너비라야 겨우 7㎝이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은 상상을 넘어선다. 날마다 마당을 보면서 연담의 마당을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술 없이는 붓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도화서 화원 연담.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죽은 뒤에야 신필이 되었으니 고독한 기인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가 보다.
연담의 마당은 풀이 점령하는 때가 더 많았다. 사람이 지나는 길에만 흙이 드러날 뿐 거의 대부분의 마당은 풀들의 전쟁터다. 사람의 손이 들어가지 않으니 저들끼리 영토 싸움을 하고 세력을 확충해 간다. 치열하던 전쟁도 서리가 내리면 일제히 멈춘다. 밖으로 드러낸 촉수를 안으로 거두어 전열을 가다듬는 이때가 풀에겐 평화기다. 성급하게 뿌리를 드러내면 말라버리거나 얼어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언 땅 아래 단단히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마당에서 일어나는 풀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곧 세상이라는 책을 읽는 것과 같았다.
제멋대로 자란 강아지풀이며 바랭이, 망초들의 각축이 한창일 때 화원 몇이 왔다. 간혹 저잣거리의 번잡함을 피해 연담의 아래채에서 술자리를 갖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술잔이 돌자 하나가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마당엔 어찌해서 풀들이 저토록 자라도록 두는가. 어찌해서 풀을 베지 않는가’ 지청구 같은 벗의 물음에 연담은 담담하게 답했다.
저 풀인들 베이고 싶겠는가. 이름 없는 풀도 제 살길을 안다네. 눈에 띄면 잘려 나갈 것을 알기에 미리 뿌리를 넓게 뻗어놓는다네. 낫에 잘려 나갈 땐 마지막 진한 향기를 남기며 존재를 드러낸다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풀냄새는 잘려 나간 풀의 몸통에서 뿜어 올리는 고통의 절규이지. 마당은 내 사유의 정원이고, 저 이름 없는 풀들은 내 언어의 조각들일세. 달빛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았는가. 여린 이파리에 보름달빛이 내려앉으면 그 달빛의 무게만큼 풀의 허리가 휘청이지. 그런 밤엔 달의 윤슬로 마당은 물결이 일렁거려. 달빛 하나하나를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내 그림 속으로 들이고 싶을 지경이라네.
상상해 보시게, 강아지풀 수염 끝에 고인 아침 이슬을…. 고 조그마한 한 방울에 온통 세상이 담긴다네. 그럴 땐 숨 쉬는 것도 아낀다네. 내 거친 호흡에 흔들린 이슬방울이 터진다면 그 속에 담긴 고요도 함께 흩어지지 않겠나.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해서 한밤 동안 물기를 잡아둔 강아지풀의 애씀이 이름 없는 것이 모여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치와 뭐가 다른가. 나는 온 밤을 건너온 물기의 수고로움이 고마워 한잔하고, 풀잎에 내려앉는 달빛이 고와 한잔하고, 흔들리며 달빛과 화답하는 풀의 낭창한 허리가 좋아서 한잔한다네. 마당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힘이고, 경전이라네.
술이 있어야 붓이 일어선다는 연담이 살아냈던 시대. 나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연담에게 술이란 자신으로 살게하는 힘이었을 게다.
비쩍 말린 나물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만드는 물처럼 연담에게 술이란 위대한 틈이었겠다. 틈이란 빛이 들어오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