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남동발전 등 발전공기업 5개사의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통합 본사 입지를 둘러싼 지역 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통합 자체보다 통합 본사가 어디에 들어설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월 ‘에너지 전환기 전력공기업 새로운 역할 연구’ 용역에 착수한 데 이어 6월 중간보고를 공개하고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어 발전공기업의 바람직한 구조와 역할을 논의했다. 정부는 중간보고를 바탕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중 발전공기업 5개사 통합을 골자로 한 구조개편의 기본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력 수급 환경 변화와 탄소중립 정책, 발전설비 운영 효율성 등을 고려할 때 현재의 분산된 발전공기업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통합이 현실화되면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은 25년 만에 다시 하나의 조직으로 재편된다.
현재 한국남동발전은 경남 진주, 한국동서발전은 울산, 한국남부발전은 부산, 한국중부발전은 충남 보령, 한국서부발전은 충남 태안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통합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이들 지역은 저마다 통합 본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는 경남도와 진주시, 한국남동발전 노동조합이 공동 대응에 나선 데 이어 진주시 공공기관 유치위원회가 범도민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유치전에 힘을 모으고 있다. 유치위원회는 운영 효율성과 기존 인프라,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진주혁신도시가 최적지라고 강조하며 1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경상국립대 총학생회도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지역에는 희망을, 발전공기업 통합 본사는 경남 진주로’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진주시의회 역시 통합 본사 진주 유치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물론 이는 진주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다른 발전공기업 본사가 있는 지역에서도 통합 본사 유치를 위한 대응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지역 간 경쟁과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역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통폐합 과정에서 본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세수 감소는 물론 청년 일자리 축소와 소비 위축 등 지역경제 전반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번 통합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에너지업계에서도 통합 자체보다 본사 입지 선정 과정의 공정성이 향후 정책 수용성을 좌우할 것이라며 명확한 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선정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이해관계 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역 간 갈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과거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과정에서 나타났던 지역 간 경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남동발전은 국가 전력 수급을 책임지는 핵심 발전공기업이다. 본사가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지역인재 채용과 사회공헌, 협력업체 지원 등을 통해 서부경남 경제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임직원과 가족의 정착은 지역 상권 활성화는 물론 주거 교육 문화 등 지역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이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단순한 기관 이전을 넘어 지역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공기업 역시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과 개혁을 피할 수는 없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개편 논의 자체를 부정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합과 분리, 확대와 축소가 반복된다면 국민은 국가 정책의 일관성을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발전공기업 통합은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미래와 국가균형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적 선택이다. 통합 여부만큼 중요한 것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통합을 추진하느냐다. 통합 본사 입지도 정치적 이해관계나 지역 간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운영 효율성과 공공성, 국민 부담 최소화라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것이 통합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의 공감과 정책 신뢰를 얻는 길이다.
김인수 경남서부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