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재명이 맞붙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2022년 3월 9일. 서울 지역 투표율 ‘톱 3’를 보여주는 네이버 홈페이지 화면에서 송파구 최종 투표율에 이상이 감지됐다. 총 47만7736명이 투표해 84.4%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표시되던 수치가 갑자기 ‘44만7839명, 79.1%’로 급락했다. 갑자기 3만 명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늘기 마련인 투표자 수가 순식간에 왜 줄어들었는지 당시로선 이해도 설명도 안 됐다. 부정선거 논란을 주로 다루던 한 온라인 매체와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문제 삼았을 뿐 여러 의혹 중 하나로 잊혀졌다.
이 미스터리가 4년 만에 풀리려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하는 투표율을 선관위 직원이라면 누구라도 접근해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던 검경이 압수수색으로 포착한 실태는 어이없다. 현장 직원들이 전산에 투표자 수를 입력하면서 과다 혹은 과소 오류가 생기자 다른 투표소 통계를 허위 입력하는 방식으로 전체를 끼워 맞췄다는 것이다. 투표율 조작 의심 투표소는 울산 울주, 경기 의왕 김포 평택, 충북 진천 등 전국적으로 100곳 이상이다. 2024년 총선, 2025년 대선에 투표자 수 입력 잘못이 있었다는 증거도 쏟아진다. ‘송파구 미스터리’는 2022년 대선 때 같은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는 바로 그 뜻이다.
선관위 통계 조작은 투표율만의 문제가 아니다. 득표 집계도 오류 투성이다. 지난번 전북도교육감 선거에서 A투표소 숫자가 B투표소에 입력되는 바람에 특정 후보의 득표 수가 1104표나 누락됐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도 투표소 착오와 후보 설정 오류로 득표 수가 잘못 집계되는 일이 벌어졌다. 2024년 총선 때는 경기 수원정에서 재확인 대상 투표지 2241표가 무효표로 처리되기도 했다. 관외 사전투표가 아예 접수되지 않거나, 이미 기표된 투표지가 관외 사전투표 회송용 봉투 안에 들어있는 사건도 있었다. 박빙승부였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다.
선관위 설명만 보면 투개표 절차에 ‘부정’은 끼어들 틈이 없다. 사전투표는 신분 확인을 거쳐 관외와 관내가 철저히 구분된 상태로 시행되고 각각의 투표용지나 투표함은 철저한 감시 속에 개표장소로 보내진다. 이후 투표함 접수-개함-투표지 분류-심사 계수-개표상황표 확인-위원 검열-결과 공표 등 7단계를 거치는 동안 선관위 직원, 일반 공무원, 정당인 등이 참관해 검증 또 검증한다는 게 선관위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공명선거는 선관위 지침이나 매뉴얼이 현장에서 철저히 준수된다는 전제가 있을 때에나 성립하는 얘기다.
선관위는 사건이 터지거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단순 실수라거나 심지어 유권자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심각한 참정권 훼손 사건’으로 규정하기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관내 사전투표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득표 수가 똑같은 쌍둥이표가 인천시장 선거에서 한 쌍, 전남광주통합시장 선거에선 5쌍이나 나왔다. 선관위는 “우연의 일치”라고 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사전투표 득표율이 253개 선거구 중 17곳에서 63%대 36%라는 동일 비율이었는데 이를 “우연의 일치”라고 했을 때와 같다. 투표율 조작은 가능한데 개표 집계는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정말 장담할 수 있나.
우리 사회에 ‘부정선거’라는 망령이 떠돈 지는 꽤 오래 됐다. 지금까지 부정선거는 음모론과 동의어였다. 누군가 가짜 투표용지를 만들고, 사전투표를 조작하고, 투표함을 탈취하거나 바꿔치기 하고, 전산망을 해킹해 숫자를 고쳤다는 주장, 그런 세력의 배후에 북한이나 중국이 있다는 주장을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믿기 힘들었다. 황교안 민경욱 윤석열 등은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국민 일반에 이런 인식이 생긴 데는 “통계적 가능성” 운운하며 음모론을 일축했던 자칭 전문가들과 정치인들도 한몫 했다. 그러나 수년여의 시차를 두고 터져나온 이 증거들이 부정선거론이 배태되던 그때 한꺼번에 드러났다면 그런 입장을 견지했을지 의문이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외피에 숨어 선관위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을 대로 썩어가는 동안 유권자는 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하고, 투표용지는 소쿠리로 옮겨지고, 기표된 투표용지가 분실되고, 투개표 통계가 엉터리로 작성되는 등의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 이것은 무능과 부실이 켜켜이 쌓여 이뤄진 ‘미필적 고의’인가, 아니면 거대한 불온세력과 그 하수인들의 길고 검은 꼬리가 교통사고처럼 드러난 건가.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건 선관위가 반복되고 누적된 잘못을 교정하지 않고 오히려 축소 은폐해온 행위, 급기야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마저 의심받게 만든 행위, 이 자체가 부정선거라는 사실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