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저 덕연이 딸인데요~
밀가루 반죽을 양손에 묻힌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달음에 다가와 반긴다. 아이돌그룹 리센느의 고향 방문 영상 속 장면이다. 1100만 조회수가 넘은 이 영상에서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엄마 친구가 하는 식당에 김치를 얻으러 가서 치킨까지 대접받는 이 부분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엄마 친구와 친구 딸 간의 ‘케미’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한 다리 건넌 관계에 보이는 이 호감은 어디서 온 걸까 흐뭇한 고민을 해 본다.
‘친구’는 산소 같은 단어다. 혈육을 표현하는, 딴딴하고 무거운 단어 앞이나 뒤에 친구가 붙으면 성질이 확 변한다. 수소에 산소가 붙어 물이 되듯. 많은 이들에게 엄마의 새된 목소리는 또렷하지만, 엄마 친구나 친구 엄마에게는 미소 띤 얼굴이 먼저 떠오르리라. 친구가 결합하면 관계의 연결은 느슨해지고 무게는 가벼워진다. 정말 화학 반응처럼. 한 다리를 건너며 서로에게 지는 책임이 없어지기 때문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이십여 년 전, 대기업에 취업해 서울로 상경한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한다며 연락이 왔다. 애써 반갑게, 못내 기뻐하며 축하했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꿈이라는 가이드는 쉬 갈 수 없는 오지에서 멋진 풍경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사기를 치거나 위험한 곳으로 이끌 때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겪듯, 그때 난 꿈을 믿고 따르다 내상을 입고 두문불출할 때였다. 보아하니, 동창 중 첫 번째 결혼이라 모두 다 모일 거 같고. 뭐 하고 지내냐, 뭐 먹고 사냐는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조차 목젖에 턱턱 걸릴 게 뻔했다. 완전 망했어! 하며 동창들에게 농담거리로 날 내놓을 만큼의 품이라도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까이 사는 동창과 함께 서울로 향하는 날. 내 방만큼 작아진 마음은 아침내 뒤숭숭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이 우리를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셨다. 늦은 밤, 불콰하게 취해 친구의 손에 잡혀 찾아가면 주무시다가도 반갑게 맞아주시던 분. 눈에 바람 더 들지 않게 바로 들어가시면 그나마 맘이 편했을 텐데 항상 응접실의 불을 켜시던 분. 부산역까지 가는 40여 분의 시간 동안, 어머님은 몇 번이나 나에게 잘될 거라고 하셨다. 우리 부모님과 입장이 바뀌셨으면 저리 말씀하지 못하실텐데….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희한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어머님의 호방한 목소리는 내 어깨를 두드렸고, 룸미러로 날 보시던 눈웃음이 마중물이 되어 내 얼굴에도 미소가 스며 나왔다. 친구의 인생 가장 기쁜 날, 어머님 덕에 너울거리는 내 심정은 밀어두고 밝게 축하를 건넸다. 모처럼 만난 동창들과 허풍과 허세로 내 처지를 눙치며 밤늦게 어울릴 수도 있었다. 그 아침은 요즘 같은 폭염 속에서 만나는 두어 발 그늘 같고 허기진 걸음 끝에 놓인 밥공기 같은 시간으로 내게 남았다.
“아빠, 친구들 놀러 와도 돼요?”
두 딸이 이렇게 물어올 때마다 마감을 연이어 치르는 쳇바퀴 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도 방문을 거절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생각했다. 운 좋게 결혼하고 기적처럼 자녀가 생기면 아들이나 딸의 친구한테 그 아침의 어머님처럼 하겠노라고. 책임 없는 격려 한 모금, 스치는 웃음 한 꼬집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이 인생에는 쉴 새 없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에 부모와 형제, 절친과 연인은 오히려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한 다리 건너온 마음의 다독임까지 받으며 가까스로 건넌 시간이 쌓여 되는 게 결국 삶이다. 고달팠을 무명 생활을 막 빠져나오면서 엄마 친구와 친구 딸이 만나는 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20여 년 전에 한글 파일로 남긴 일기와 기록을 뒤지고,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녀석이 말하는 모양새가, 그날 아침의 기억은 나만 간직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내게는 잊지 못할 위로를 받은 아침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을 뿐. 속 넓은 어머님과 친구에게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주되 잊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