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한국은 오늘날의 선진국이 되었을까.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근면 성실이 근원적 힘이지만 한국의 성장 패턴을 들여다보면 국제질서의 판이 뒤집히는 시기와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볼 때 196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5번의 지각판이 뒤집혔다. 이때마다 한국은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첫 번째 기회는 1964년 터진 베트남전쟁이다. 이 전쟁은 냉전기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판 뒤집기를 시도한 결과 중 하나였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이로 인해 군인들의 급여가 달러로 들어왔고, 동시에 군수 조달, 건설, 운송 서비스와 같은 베트남 시장이 한국에 열리면서 대규모 달러벌이를 할 수 있었다. 이것만 아니었다.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에서의 비즈니스를 통해 해외 기업과 협상하고 계약하는 방법을 익혔고, 현지 인력을 관리하고 국제적 기준에 맞춰 공사를 수행하는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것이 다음 단계인 중동 건설 붐을 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베트남전쟁 이후 경제적 소강상태였던 한국에 새로운 볕이 들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터진 것이다. 이 배경에는 1971년 미국의 달러 금 태환 정지 사건과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얽혀 있다.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제도를 폐지하자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미국 경제도 혼란에 빠졌다. 2년 후에는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오일쇼크(1973년 10월~1974년 3월)까지 겹치며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두 사건이 교묘하게 엮이며 글로벌 새판 짜기가 등장했다.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4배 폭등하자 미국은 중동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고, 중동 국가들은 지역 안보를 지켜 줄 국가가 필요했다. 두 요구가 맞아떨어진 사건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맺은 달러 기반 석유 거래 협약이다. 이것이 ‘페트로 달러’의 출발점이다. 이는 힘을 잃어가던 달러를 소생시켰다. 금 대신 검은 금(석유)이 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중동 국가에 달러가 넘치기 시작했다. 오일쇼크로 가격 폭등의 혜택에 판매 대금을 기축통화인 달러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동 국가들은 이 돈으로 인프라 구축에 매진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들에게는 필요한 노동력과 기술이 없었다. 이를 한국이 채워주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막대한 달러를 벌었고 플랜트와 대형 인프라 구축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도약은 1985년 체결된 플라자합의 덕이 크다. 1980년대 들어서자 미국에 걱정이 생겼다. 소련을 눌렀더니 일본이 세계 2위의 강자가 된 것이었다. 어느새 일본은 미국에 무역적자를 가장 많이 안긴 나라가 되었다. 놀란 미국은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체결을 종용하였다. 일본과 독일의 환율을 급격히 절상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자 일본 제품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또 다른 충격이 미국에 가해졌다. 메모리 반도체의 원조이자 최강자였던 미국의 인텔이 일본 반도체에 밀려 1985년 10월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곧바로 1986년 일본과 반도체 협정을 맺으며 일본 반도체 죽이기에 돌입했다. 이것이 오늘날 삼성전자 반도체가 있게 된 이유다. 비싸진 일본 제품을 대체하면서 한국은 제조업의 정수인 품질 관리, 대량 생산, 기술 추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네 번째 기회는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과 관련 있다. 이것은 1970년대 미국이 소련과 중국을 분리하기 위한 전략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에 시장을 열어주었다.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서자 미국 클린턴 정부는 2001년 중국을 아예 자유 진영 시장의 핵심 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주었다. 그런데, 이 시기 중국은 필요한 생산 기술과 중간재가 부족했다. 이것을 한국이 메꾸기 시작했다. 한국은 미중 간의 화해 분위기가 감지되자 1992년 한중 수교를 맺었다.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규모로 진출했고, 동시에 한국의 반도체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철강 기계 정밀부품이 생산 설비와 함께 물밀듯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덕분에,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8126달러였던 한국의 1인당 GDP가 2014년에는 3만935달러에 이르렀다.
다섯 번째 도약은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 이후 본격화된 미중 공급망 분리와 관련 있다. 이로 인해 한국도 피해를 입었지만 큰 시각에서 보면 한국에는 또 다른 도약의 기회다. 공급망 분리가 안 된 중저가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초토화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다행히 첨단 분야에서는 공급망 분리가 비교적 철저하다. 예로, 미국은 네덜란드 ASML이 만드는 첨단 반도체 장비인 극자외선노광기(EUV)의 중국 판매를 막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삼성전자도 중국의 파고를 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 첨단 제품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았다. 이 공백을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 기회는 미중이 대립하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다섯 번의 도약에 나타난 패턴이 있다. 미국이 국제질서의 판을 뒤집고 한국은 이것을 기회로 활용했다. 앞으로도 이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