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실금 때문에 진료실을 찾은 70대 여성과 긴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40대에 기침이나 운동할 때 소변이 새는 요실금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후 불편 없이 지냈지만, 60대 들어 변비가 생겼다. 배변 후 잔변감과 깨끗하게 닦이지 않는 불편함이 생겼다. 뒤가 묵직하고 뭔가 빠질 듯한 느낌과 함께 간혹 직장통도 나타났다. 밤에 한두 번씩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기도 했다. 최근에는 변을 참기 어렵고 자신도 모르게 팬티에 변이 묻자 병원을 찾았다.
환자에게 요실금과 변비, 직장통, 변실금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생긴 서로 다른 병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골반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의 눈에는 다른 큰 그림이 보인다. 방광과 자궁, 직장은 따로 떨어진 장기가 아니다. 좁은 골반 안에서 인대와 근육, 근막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제자리를 유지하고, 신경의 조절을 받으며 함께 움직인다.
골반을 기둥과 벽, 바닥이 있는 하나의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위에서는 튼튼한 인대가 자궁과 질을 매달고, 양옆에서는 지지조직이 장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으며, 아래에서는 골반저 근육과 회음부가 받쳐준다. 어느 한 곳이 약해져도 건강할 때는 주변 조직이 역할을 대신하지만, 약해진 곳이 많아지면 골반 전체의 균형이 흔들린다.
여성 골반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대표적인 의학자가 미국의 산부인과 의사 드랜시(DeLancey)와 호주의 페트로스(Petros)이다. 페트로스는 골반의 지지구조를 현수교에 비유했다. 현수교가 양쪽 기둥과 팽팽한 케이블의 균형으로 버티듯 골반도 앞쪽의 두덩뼈와 뒤쪽의 엉치뼈 사이에서 여러 인대와 근육이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방광과 자궁, 직장을 제자리에 잡아둘 수 있다. 임신과 출산, 폐경과 노화, 비만, 만성 변비 등은 이 지지구조를 약하게 만든다.
어디가 약해지느냐에 따라 증상도 달라진다. 앞쪽의 지지가 약해지면 요실금이나 빈뇨, 절박뇨 같은 배뇨 증상이 생긴다. 가운데가 약해지면 자궁, 질이 내려오면서 묵직하거나, 뭔가 빠지는 느낌이 든다. 뒤쪽이 약해지면 직장이 제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배변에 문제가 생긴다.
직장벽이 질 쪽으로 불룩해지면 ‘직장류’, 직장이 항문으로 빠지면 ‘직장탈출증’이 된다. 이런 변화가 생기면 변을 보기 위해 오래 힘을 주고, 배변 후에도 잔변감이나 뒤무직을 느끼게 된다. 배출장애가 오래 지속하면 역설적으로 변이 새거나 변실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골반의 구조적 변화와 증상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정도의 직장류라도 불편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출 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인대뿐만 아니라 골반저 근육과 신경 기능, 오랜 배변 습관 등이 함께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가 얼마나 내려왔는지보다 환자가 어떤 불편을 겪는지 살펴야 한다.
처음의 70대 여성으로 돌아가 보자. 40대의 요실금, 60대 이후의 변비와 잔변감, 이어진 직장통과 배뇨 증상, 최근의 변실금은 각각 다른 병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반 전체를 하나의 지지구조로 바라보면 오랜 세월 골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경험 많은 전문의는 증상을 통해 문제가 생긴 구조를 짐작하고, 또한 무너진 구조를 살펴 어떤 증상이 나타날지도 읽어낼 수 있다.
‘골반장기탈출’은 어느 날 갑자기 장기가 떨어지는 병이 아니다. 위에서 매달고, 옆에서 붙잡고 아래에서 받치는 힘이 오랜 세월 조금씩 약해지면서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다. 골반은 단순히 방광과 자궁, 직장이 들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인대와 근육, 신경이 균형을 이루며 장기를 지지하고 배뇨와 배변 기능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구조물이다. 병의 이름과 증상은 달라도 그 이면에는 골반 지지구조의 변화라는 공통된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구조가 변하면 기능도 달라진다. 이것이 ‘골반의 건축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