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재계 총수들이 글로벌경제계에서 과거보다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재계 총수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 재벌의 경영행태나 방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하다는 점과 정경유착을 통한 기업경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경영 후진성과 오너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이 평가절하의 큰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한국 재벌 총수에 대한 글로벌 경제계의 시각은 크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대기업 경영인들이 줄지어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친밀한 교분을 형성하는가 하면 사업측면에서도 상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글로벌 경제계가 한국 재벌의 경영방식과 지배구조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성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내리기 시작한 점이다. 이런 배경에는 외환위기 사태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시작된 기업경영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각종 법률정비와 재벌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누적된 측면도 있다. 시대적 요구와 변화를 외면하면 한국 경제 전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변화의 배경이었다.
그러면 한국 재벌 내부는 실제 얼마나 변화했을까. 한국 재벌의 변화가 본격 가시화된 시점은 2010년대 중반이었다. 박근혜 정부를 침몰시킨 ‘국정농단사건’이 재벌의 변화를 가속화한 정점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 배경 중 하나로 한국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때문이었다. 당시 위기에 몰린 삼성의 경영권 승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 재벌 사상 혁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자식이나 혈육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는 핵폭탄급 선언을 한 것이다.
한국 재벌에서 삼성그룹이 선언한 혈육 경영승계의 포기는 두 가지 점에서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그룹 전체가 몰두했던 비정상적 행태가 사라진다는 점이고, 둘째는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를 통해 총수의 황제식 경영이 막을 내린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재벌은 총수 일가족의 사익추구와 독단적 경영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그룹 전체가 소모적 경영에 희생되었다. 심지어 총수와 일가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계열사의 인력과 자원이 총동원돼 편법과 탈법도 마다하지 않는 기형적 경영행태도 자행됐다.
아직 완전히 투명해졌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재벌3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재벌의 경영방식이 큰 변화를 이어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재벌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을 필두로, 현대차그룹, LG그룹은 시장논리에 근거를 둔 내부시스템의 구축에 보다 적극적이다. 시장경제논리를 외면하거나 과거의 경영시스템을 고집하다간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재벌 변화를 촉발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구태의 경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 답습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막대한 기업이익을 총수 일가의 사익으로 빼돌리기 위해 골몰하는가 하면 약물중독과 범죄경력이 있는 총수 자제를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위 경영진에 버젓이 위인설관하는 행위를 자행하는 곳도 있다. 게다가 시장과 주주들이 어떤 평가를 하든 전직 총수의 아들, 딸들이 재산과 경영권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곳도 적지 않다. 일부 재벌에서는 경영인은 물론이고 직원들까지 네 편, 내편으로 갈려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곳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재벌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기업은 더욱 지원하고,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곳은 냉혹하게 퇴출시키는 법과 시장의 논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작은 티눈이 종양으로 번져 결국 암으로 악화되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 경제 전체의 짐이 되는 부조리한 사슬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앞서 무엇보다 재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소비자와 시장이 지지하지 않으면 언제든 경쟁의 무대에서 퇴출된다는 위기의식과 책임의식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