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유난히 감성이 뜨거운 사회다. 감성은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지만 그것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이 상했다고 상대를 공격하고, 공적인 원칙보다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문화가 확산하면 사회는 신뢰를 잃는다. ‘내 심기 우선주의’가 일상이 되면 규칙보다 감정이, 질서보다 보복이 앞서는 사회가 된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업무가 미숙한 직원을 지도한 상사가 되레 모함의 대상이 되거나, 불법 주차를 한 사람이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치고, 노약자석을 양보해 달라는 말에 폭언이 돌아오는 일들이 낯설지 않다. 자신의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응징하려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학교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지난 7월 경남지역 초등학교 45곳의 교사를 대상으로 공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현재 공교육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9%가 ‘아동학대 신고 제도 악용’과 ‘과도한 학부모 민원’을 꼽았다.
왜 이런 현실이 되었을까. 교사들은 학생 생활지도를 시작하기 전에 교육적 효과보다 혹시 제기될 민원을 먼저 걱정한다고 말한다. 정당한 훈육과 생활지도가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실제로 교사의 발언을 녹음하기 위해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키는 사례까지 있었다. 일부 사례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장 교사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너무 크다. 설문에서도 상당수 교사는 학부모 민원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더 큰 문제는 무고성 신고가 가져오는 후유증이다.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되는 순간 교사는 경찰 조사와 법적 절차, 정신적 스트레스, 경제적 부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훗날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 정신적 피해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결과 교사들은 적극적인 생활지도를 포기하고, 학생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이번 조사에서 교사들은 악성 민원을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일원화해 접수·관리하는 제도와, 허위 신고가 확인될 경우 무고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제도 마련을 강하게 요구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참교육’에 등장한 ‘교권보호국’ 신설에 대해 응답자의 99%가 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일부에서 거론한 강압적 방식의 생활지도보다 전문 상담과 심리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현장의 교사들이 드라마 속 설정에 공감할 정도로 절박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보다 민원을 먼저 걱정하는 교실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교사가 흔들리면 수업이 흔들리고, 결국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공교육은 무너진다. 이제는 교권과 학생 인권, 학부모의 권리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