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유석은 석회암 동굴에서 지하수에 녹아 있던 석회 성분이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 고드름 모양의 석회 기둥이다. 종유석 바로 밑 동굴 바닥에는 그 낙수에 의해 동일한 성분의 석순이 형성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종유석과 석순이 충분히 자라나 서로 만나면서 마침내 거대한 석회 기둥인 ‘석주’를 이룬다. 육안으로는 지극히 깨끗해 보이는 지하수가 이토록 거대한 돌 기둥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시간’이다. 오랜 시간 흐르는 물이 바닥의 돌을 깨뜨려 홈을 만들듯, 눈에 보이지 않는 점진적인 축적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역시 동굴의 종유석처럼 평소에는 병을 유발하지 않던 작은 사건들이 오랜 시간 반복되며 발생한다. 정상적인 뇌에서도 생성되는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조각나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된다. 이 단백질이 어떤 원인에 의해 과도하게 생성되거나 배출이 줄어들면, 점차 크고 단단한 섬유 형태인 아밀로이드 덩어리(플라크)가 되어 신경세포 바깥쪽에 쌓이기 시작한다. 정상 상태의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뇌신경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돕는 이로운 역할을 한다. 그러나 덩어리 형태로 뭉치게 되면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를 차단하고 염증을 일으켜 뇌세포를 서서히 사멸에 이르게 한다. 무서운 점은 치매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이미 아밀로이드 덩어리가 뇌 속에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뇌는 오랜 기간 방어 작용으로 버티지만, 그 한계에 다다르면 타우 단백질의 변성을 유발하며 본격적인 인지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
이러한 아밀로이드 덩어리의 축적과 뇌세포 손상을 유발하는 위험 인자들은 이미 학계에 잘 알려졌다. 음주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뇌세포를 직접 파괴한다. 또 음주 후 발생하는 비타민 등의 영양 결핍도 뇌 기능을 떨어뜨린다. 담배는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유발해 뇌혈관을 막거나 좁게 만들며, 혈관성 치매의 위험을 극도로 높인다. 당뇨는 혈관 내벽을 두껍고 뻣뻣하게 만들어 뇌혈관을 좁히거나 막음으로써 뇌세포 손상을 유발한다. 특히 뇌 속 인슐린 기능이 떨어지면 알츠하이머의 핵심 원인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축적이 촉진된다. 대사 장애에 의한 독성 물질 역시 신경 회로를 파괴하고 뇌 위축을 유도한다. 경미한 비염이나 치주염 등이 오래 되어도 혈액 속 염증 물질(사이토카인 등)이 뇌로 이동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뇌 부피를 줄인다. 아울러 호흡기 질환, 매연, 수면무호흡증 등에 따른 간헐적 저산소증이 장기간 지속하는 것 역시 뇌세포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만약 간단한 혈액 검사로 치매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생활 습관을 선제적으로 조절하여 치매를 예방하거나 발병 연령을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다. 최근 의학의 발전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바이오마커들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혈액 내 아밀로이드 베타 42와 40의 비율(Aβ42/Aβ40)이 낮을수록 뇌 속에 아밀로이드 덩어리가 많이 쌓여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뇌와 신경계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NfL(신경섬유경쇄)은 뇌세포나 신경 손상이 발생했을 때 세포 밖으로 흘러나와 혈액 내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즉, 혈액 중 Aβ42/Aβ40 비율은 낮고 NfL 농도가 높다면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빠르며, 향후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신호다.
이론적으로 동굴 속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을 조절하거나 물속의 석회 성분을 줄인다면 종유석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 인류는 출생과 더불어 치매 발생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매년 정기 건강검진을 받듯, 젊을 때부터 선제적인 검사를 통해 뇌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뇌 속 종유석의 성장 속도를 늦추고, 치매라는 거대한 불행을 막아서는 가장 현명한 예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