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도시는 무대가 아니라 토양이다

부산비엔날레 만든 건 해외 유명 브랜드 아닌 지역작가의 열망·실험

외부서 옮긴 문화 대신 지역성으로 세계화를

김성헌 부산미술협회 학술평론 회장

  • 김성헌 부산미술협회 학술평론 회장
  •  |   입력 : 2026-09-09 19:23:14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달 29일 막을 올린 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 오는 11월 1일까지 65일간 이어진다. 22개국 46작가·팀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과 스페이스 원지, 옛 부산남고등학교를 잇는다. 소리와 몸, 퍼포먼스를 통해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는 방식을 살피고, 하나의 목소리로 환원되지 않는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불협하는 합창’은 흥미로운 명제다. 합창은 모두가 같은 음을 내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음색과 높낮이가 각자의 차이를 지키면서도 하나의 울림을 이루는 과정이다. 공식적인 역사에서 밀려난 기억과 노동, 이주와 저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전시의 취지는 분열과 단절이 깊어진 오늘의 현실을 향하고 있다.

그 명제를 부산으로 되돌려보자. 서로 다른 목소리들의 공존을 말하는 비엔날레에, 정작 부산미술인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들어 있는가. 이는 지역 작가를 몇 명 더 참여시키자는 지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도시가 축적해 온 예술의 시간과 사람, 공간이 비엔날레의 사유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부산미술의 역사는 결코 얕지 않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부산미술가동맹에서 출발한 부산미술협회는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국가의 제도도, 문화적 기반도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 예술가들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전시를 열었다. 한국전쟁과 피란수도의 혼란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부산의 예술은 행정이 그어놓은 도면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삶의 절박함 속에서 스스로 길을 내며 자라났다.

부산비엔날레의 기원도 이 흐름과 다르지 않다.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 1987년 바다미술제, 1991년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을 거쳐 오늘의 체계에 이르렀다. 정치적 명분이나 해외 유명 기관의 브랜드가 먼저였던 행사가 아니다. 새로운 미술을 향한 지역 작가들의 열망과 실험, 시민의 참여가 국제전의 형식을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렸다. 부산은 세계적인 미술행사를 건네받은 도시가 아니라, 그 형식을 스스로 일구어낸 도시다.

최근 부산의 문화정책에서는 ‘세계적인 미술관’과 ‘글로벌 문화도시’라는 거대한 담론이 자주 등장한다. 국제적 교류와 수준 높은 해외 전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름난 기관과 작가를 불러오는 것만으로 한 도시의 문화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옮겨온 나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세계성은 지역성을 지운 자리에서 얻는 훈장이 아니라, 한 도시의 고유한 경험이 세계의 언어를 획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부산을 무대로 삼는 비엔날레와 부산의 예술적 전통에서 성장하는 비엔날레는 같지 않다. 무대는 이미 완성된 것을 보여주고 행사가 끝나면 비워지는 곳이다. 토양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길러내는 곳이다. 비엔날레가 부산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소비하는 데 그친다면 도시는 거대한 전시 장치로 남는다. 그러나 이곳의 역사와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다음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도시는 무대가 아니라 토양이다.

과거 부산비엔날레에는 지역의 대안공간들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당시 필자가 운영하던 ‘대안공간 비움’에서도 그 연계 프로그램으로 김은주 작가 초대전을 개최했다. 국제전의 지도가 미술관에서 끝나지 않고 도심의 작은 공간까지 이어지자, 작가와 관람객은 미술관 밖 일상의 거리에서 비엔날레를 만났다. 지역의 작은 공간들이 중심 행사의 장식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현장에서 비엔날레의 경계를 넓혔던 경험이다.

그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한다. 최근 부산 퐁피두미술관 분관 유치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열린 ‘퐁·반500展’에서는 부산 전역의 28개 갤러리가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 연대했다. 서로 떨어져 있던 전시장들이 연결되자 도시 곳곳에 새로운 문화적 동선이 생겼고, 개별 공간은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공론장으로 확장되었다. 비엔날레의 지도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멈추지 않고 원도심과 골목의 갤러리, 대안공간까지 이어진다면 어떨까. 부산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전시가 될 수 있다.

지역의 원로·중견·청년 작가와 국제기획자가 함께 작업하고, 부산미술협회 80년의 기록이 새로운 창작의 자료가 되며, 시민이 관람을 넘어 제작과 토론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폐막과 함께 철거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세계적인 비엔날레는 세계가 부산으로 찾아오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부산이 자신의 역사와 목소리로 세계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운명의 일주일’… 가덕도신공항 난제 풀 대책 나올까
  3. 3‘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4. 4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5. 5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6. 6태풍 ‘참피’ 영향 부산 이틀 동안 112㎜ 비…주택 담장 무너져
  7. 7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8. 8[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9. 9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10. 10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1. 1[속보] 한동훈 “오세훈 무죄 판결에 참 다행스럽다 생각”
  2. 2‘YS 오른팔’ 故최형우 빈소 조문한 김민석 “여야 넘어 성찰”
  3. 3법무장관 후보 검찰출신 박균택·양부남 2인 압축
  4. 4북한군 자주포, 韓 카메라에 찍힐만큼 가까이 배치 …접경지 긴장고조
  5. 5김정은, 중국 6·25참전기념관서 “조중친선 영원히 계승”
  6. 6김정은 방중, 북중혈맹 과시, 경제협력 확대에 무게
  7. 7법무장관 박균택·양부남 유력, 野 "李 죄 지우기 인선이냐"(종합)
  8. 8[2026 국감 브리핑] 정동만 “부산에 금융·해양 공공기관 집중 배치해야”
  9. 9울산 동구의회 의원 내년 월정수당 15% 인상
  10. 10李대통령, 26일 ‘농어민과 대화’…농지조사·CPTPP 등 의견수렴
  1. 1올해 임시·일용근로자 31년來 최소…40세 이상에 감소 집중
  2. 2‘운명의 일주일’… 가덕도신공항 난제 풀 대책 나올까
  3. 3CNN,“서울이 뉴욕이면 부산은 LA”…부산 조명
  4. 4[속보]‘부캉이’ 이틀 연속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
  5. 5부산에서 광저우·샤먼으로 가는 직항 하늘길 처음 열렸다
  6. 6‘책임경영 선언’ 정용진 이마트 대표 내정…신규임원 역대 최대
  7. 7'삼성고시' 24~25일 실시, 신입사원 연말 최종 선발
  8. 8롯데 6개 계열사, 베트남 현지인력 채용 나선다
  9. 9SK하이닉스, 솔리다임 상장 중단…중복상장 논란에 주주 반발
  10. 10국회 재경위 "종부세 개편 땐 임차인 세부담↑·수도권 집중 심화"
  1. 1‘부캉이’ 수로 떠난 날 북항 기름 유출 원인은 유조선
  2. 2HD현대중공업 기본급 12만 원 인상 골자 올해 임단협 2차 잠정합의안 마련
  3. 3부산항 인근에 머물고 있는 ‘부캉이’ 이모티콘도 나왔다
  4. 4태풍 ‘참피’ 영향 부산 이틀 동안 112㎜ 비…주택 담장 무너져
  5. 5중학생이 소화기로 진화 시도…부산 스터디카페서 불
  6. 6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최대 12배 웃돈 받고 되팔아
  7. 7부산·울산·경남 흐리고 비…26일 아침까지 이어져
  8. 8경기 안성 저수지 낚시터서 초등학생 물에 빠져 숨져
  9. 9창원 휴대전화 부품업체서 40대, 낙하물 맞아 숨져
  10. 10'시장 캠프·인수위 출신' 창원시 산하기관장 후보 4명 청문 줄줄이
  1. 1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2. 2안세영, 시즌 10번째 우승…프랑스오픈 3연패
  3. 3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4. 4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5. 5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6. 6‘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7. 7‘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8. 8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9. 9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10. 10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원칙이 흔들린 대가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AI가 찾은 보안 구멍
if, 손아섭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산업은행 부산 이전 혼선 키운 정부, 명확히 답하라
공공 건설현장 안전불감증 여전…관리감독 강화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