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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타스틱 행사 모습.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
랜드마크라고 하면 우리는 파리의 에펠탑이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한눈에 도시를 알아보게 하는 건축물을 떠올린다. 그러나 도시브랜딩에서 랜드마크의 힘은 높이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정체성을 얼마나 압축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남느냐에 있다.
오사카 도톤보리의 글리코 사인은 건축물조차 아니다. 빌딩 숲에 걸린, 오래된 광고판 하나가 웅장한 오사카성 못지않게 도시를 상징한다. 반면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한 산업도시의 운명과 이미지를 바꾼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다. 크기와 기능, 만들어진 방식은 다르지만 둘은 같은 일을 한다. 도시를 기억하게 만든다. 랜드마크는 물리적 규모를 넘어 한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표식이다.
과거의 랜드마크가 세계를 향해 내건 거대한 간판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경험하는 장소가 도시를 대표한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떠나는 곳에서 시민이 걷고 먹고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시장과 골목, 동네 서점, 개성 있는 카페도 도시의 얼굴이 되고 있다. ‘생활 랜드마크’의 등장이다.
생활 랜드마크에서는 규모보다 기억의 밀도가 중요하다. 누가 설계했는가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해왔는가가 장소의 성격을 만든다.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으며 시간이 쌓인다. 영도의 항구와 조선소 사이에 로스터리와 문화공간이 자리 잡듯, 오래된 풍경 위에 오늘의 일상이 포개지면서 도시의 정체성도 조금씩 달라진다. 남천동의 빵집들이 ‘빵천동’이라는 장소성을 만들고 ‘빵타스틱’ 같은 축제로 확장된 것도 사람들의 반복된 발걸음이 만들어낸 변화다.
도시는 하나의 풍경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역에서 내려 거리를 걷고, 골목을 지나 가게에 들르고, 사람을 만나는 동안 여러 이미지가 쌓인다. 부산 역시 광안대교나 해운대의 스카이라인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도시의 작은 표정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모여 부산이라는 인상을 만든다.
따라서 랜드마크도 하나의 건축물이나 장소에 가둘 필요가 없다. 랜드마크를 점(Point)에서 선(Line)으로, 다시 관계망(Network)으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상징물이 점이라면 장소와 장소를 잇는 흐름은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만나면서 도시 전체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개별적인 상징보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랜드마크 시스템’이다.
북항의 부산오페라하우스, 복원되는 옛 부산세관 청사, 롯데타워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면 북항과 원도심의 풍경도 크게 달라진다. 각각을 하나의 명소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북항에서 이들을 지나 남포동과 자갈치, 영도로 향하는 길에는 이미 오래된 골목과 상점, 피란수도의 흔적, 항구의 풍경이 있다. 새 건축과 오래된 장소가 이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때 각각의 랜드마크는 부산이라는 더 큰 맥락을 갖게 된다.
따라서 건물을 설계하는 것만큼 건물 사이를 고민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여기서 ‘사이’는 물리적인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동선이며, 오래된 상권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고 서로 다른 시대의 풍경이 교차하는 접점이다. 랜드마크 시스템은 개별 장소보다 그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데서 시작한다.
도시브랜딩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일상에 뿌리내린 가치와 앞으로 등장할 공간을 촘촘히 엮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기억 장치로 만드는 일이다. 이제 하나의 랜드마크보다 도시 전체의 랜드마크 시스템을 구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