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나의 장편소설 ‘목마와 화부’를 건넸을 때의 일이다. 학식께나 있는 지인에게 무미하게 책만 건네기엔 성의가 없어 보였다. 책 봉투야 준비되어 있었지만.
하여 지인이 보는 앞에서 겉표지와 속표지 사이의 면지에 헌사 몇 자를 쓰고 내 필명 문형을 쓴 다음, 글귀 첫머리에 두인(頭印) 낙관을 찍었다.
그 두인을 보고 지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책에도 이런 인장을 찍습니까?” 그는 주로 동양화나 서예 작품에 찍혀있는 두인을 봐왔기 때문일 터.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특정 예술 분야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예술인이나 문학 작가가 고유 철학이나 작품관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찍는 거니깐 제한은 없습니다.”
고맙다며 책을 건네받은 그가 이제는 두인 속의 한자 뜻을 물었다. “주정원(朱炡垣)이라. 원래의 성씨를 바꾼 건 아닐 테고. 다른 필명입니까? 아니면 중국 어느 별장에서 작품을 썼다는 말인지?” 그렇게 넘겨짚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붉을 주(朱)자가 중국 색깔이 강한 데다, 담 원(垣)자 역시 좁은 우리나라가 아닌 넓은 대륙풍 이미지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중국의 어느 별장이 아니라 반송에 있는 제 집필실 이름입니다.”
너무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지인이 “허허허” 웃곤 즉시 반문했다. “집필실은 그야말로 집인데 담 원(垣)자를 씁니까? 집필실에 그런 한자 쓰는 건 여태 처음 봅니다.” 나도 맞장구로 “허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대개는 재(齋), 당(堂), 헌(軒), 실(室)과 같이 집을 뜻하는 한자를 붙여 짓습니다만, 제 집필실은 좁은 셋방이라 웅지라도 크게 가지려고 그렇게 지었습니다.”
들을수록 재밌다는 듯 그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물었다. “그럼 ‘주정원’ 한자를 풀이하면 ‘붉은빛이 나는 담장’ 이런 뜻이 맞습니까?” 내가 박수로 응했다. “맞습니다. 붉게 빛나는 담장.” 그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지 앞뒤를 따졌다. “방금 좁은 셋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3층의 골방이나 다름없는 집필실에다 붉은 담 운운하니, 뭔가 의아스러운 모양이었다.
지금은 문학작품 출판을 하게 되면 웬만히 이름나 선인세를 받는 작가가 아닌 한, 출판사들이 판매된 부수를 사후 정산하여 저작권 사용료로 지급한다. 요즘은 대부분의 유통 판매가 전산으로 이루어져 그렇게 하지만, 예전의 출판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과거의 출판 과정은, 작품이 인쇄되어 제본까지 마친 책의 발행정보면 또는 서지에 저자의 인장이 찍힌 ‘인지’를 붙였다. 그 인지의 수에 따라 저작권료를 지급하여 흔히 인세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 시절 작가들은 작품을 완성하여 ‘인지’를 찍을 땐 인세에 대한 기대도 컸겠지만 ‘인장’이 찍힌 인지는 작가의 명예나 다름없었기에 그만큼 소중했다.
그런 설명에 덧붙여 내가 대답했다. “인장은 붉은 인주로 찍기 마련이고 그렇게 찍힌 인지는 붉은 테두리, 즉 담장이 있지 않습니까? 붉게 빛나는 담장 안에는 당연히 저자의 이름이 들어갈 테고요. 그 이름이 저의 필명이라면, 제 작품과 명예가 붉게 빛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런 의지의 표현으로 지은 겁니다.” 그때야 지인이 놀라워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집필실 이름입니다. 그런 작명을 하였다니!”
그는 인사치레로 대단하다고 평했지만 그렇게 지은 데는 내 나름의 다른 속뜻도 있다. 지금같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면 문학 시장에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작품 출판을 너무 쉽게 생각하여 자칫 작품에 대한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저하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젊을 때야 한낱 객기로 작품 출판을 해도 점점 수준을 개선해 나갈 기회가 있지만, 나와 같은 늦깎이 작가가 저질 또는 오류투성이 작품을 출판하게 되면 작가로서의 명예를 드높이기는커녕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 그만큼 작품성과 명예에 따르는 책임도 지겠다는 뜻이 ‘주정원’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