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원들 진료실에서는 심각한 경기 악화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경제성장률과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앞으로도 세계 경제는 거시적으로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완만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성장의 수혜를 현장에서 체감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환자들은 여전히 아프지만 치료비를 쉽게 지불하는데에 부담을 느끼고, 인건비와 물가는 오르기에 병원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재편, 재정 부담은 지속적인 구조적 제약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지방은 인구 및 소비 감소의 영향을 먼저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관절 척추병원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더욱 뚜렷하다. 어깨 무릎 척추 등의 흔한 질환을 치료하지만, 대부분의 진료가 건강보험 급여체계 안에서 정부가 정한 수가의 영향(물가 상승률도 반영되지 않는)을 크게 받기에,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면서도 비용과 투자의 부담이 큰 구조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형외과는 임상 진료를 통해 축적되는 전문성과 기술 비중이 상당히 크지만, 이를 병원 밖의 산업으로 연결하는 데에도 제약이 많다. 예를 들어 치과에서는 임플란트라는 의료 기술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오스템임플란트와 디오 같은 기업의 성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플란트 제조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장비와 교육, 해외시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의료 현장의 기술이 산업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정형외과에도 몇몇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있으나 개별 정형외과 병원이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기기 개발, 재활·운동, 교육, 연구개발, 디지털 헬스케어 등의 영역으로의 확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 이유를 단순히 규제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인공관절이나 척추 기기는 환자의 신체 기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의료기기다. 제품 개발과 허가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안전성과 임상적 근거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의료의 공공성과 환자 안전을 위해 일정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환자 안전을 위한 규제와 의료기관의 산업적 확장을 제한하는 규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하고 있다. 의료기기 임대·판매, 숙박·여행·외국인 환자 유치, 체력 단련장, 장애인 보조 기구 제조·수리 등 일부 사업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이 경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이 돈을 더 벌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료 현장에서 축적된 전문성과 기술이 병원 안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의료기관에는 독립된 법인을 통한 의료기기 연구개발과 제조, 재활·운동 서비스, 의료기술 교육, 디지털 헬스케어, 외국인 환자 관련 사업 등을 보다 폭넓게 허용하는 대신 진료와 사업 부문의 회계를 분리하고 이해충돌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된다. 공공성을 지키면서 산업적 확장을 허용하는 방법은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중요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병원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병원의 전문성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진다면 병원은 지역의 중요한 산업 기반이 될 수 있다. 병원이 문을 닫으면 환자만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의료진과 직원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주변 상권도 영향을 받는다. 지역의 병원은 의료기관인 동시에 하나의 생활 인프라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은 고성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모든 산업을 직접 지원하기보다 민간의 전문성과 자본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불필요한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한 규제는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업 확장까지 동일한 잣대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병원을 살리는 것은 병원만을 살리는 일이 아니다. 지역의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결국 국민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의료 정책은 의료비를 줄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필요한 의료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고, 의료 현장에서 만들어진 전문성과 기술이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의료 정책이 고민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