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이 지어냈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김나박이’라는 말이 있다.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소위 한국에서 손꼽히는 보컬리스트, 그야말로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이다. 그중에 포함되는 이가 가수 김범수다. 본래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멋진 노래를 선사하는 가수라는 건 알았지만, 최근 3, 4년 사이에 콘서트에 다니게 되면서 더 느끼게 됐다.
몇 년 전 사직 체육관에서 앙코르의 앙코르를 거듭해 가며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노래를 들려주려는 모습과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래 실력이 가슴에 찡한 감동을 줬다. 게다가 비 오는 날 드림씨어터에서 있었던 콘서트에선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는지 팔에 몇 번이나 소름이 돋았다. 데뷔 25주년 콘서트에서도 특유의 힘 있고 뻗어나가는 목소리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음 이탈이나 이상한 목소리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 방송 안에서 그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정 음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났다.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입을 틀어막으며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목구멍이 막혀오고 코에 물이 들어왔을 때처럼 얼얼하고 아픈 느낌이 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국에서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그 사람이, 고음도 아닌 음에서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끼익’ 하는 소리가 들러붙은 음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가 그런 상태로 노래를 끝까지 했다는 거다. 가수 김범수의 메가 히트곡 중 하나인 ‘보고싶다’를. ‘보고싶다’는 사람들이 콘서트에서 꼭 듣고 싶어하는 그의 대표적인 곡이다. 일반인이 부르기엔 물론 어려운 곡이지만 그의 목소리의 매력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한 그런 곡인데. 그가 ‘보고싶다’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구나 골프에서 들어본 용어, ‘입스’가 떠올랐다. 부상이 아닌데도 특정한 동작이 아무 이유 없이 안되는 것. 그의 음역대에서 아무 문제 없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고 있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성대를 면밀히 살펴봐도 기능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프로 선수가 입스가 오면 피나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이겨내거나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 극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아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발성교정을 끊임없이 받으면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공중파 방송에서 그대로 보여줬다. 그가 사력을 다해 노래하는 동안 발성 교정 전문가들도 숨도 안 쉬고 집중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듣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지나자, 전문가들은 아주 많이 좋아져서 놀랐다며 그를 격려했고,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의논했다. 이건 더 이상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큐였다. 자신의 경력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를 완전히 열어 보이면서 그럼에도 나는 한 발 씩 나아가고 있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완전히 공개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걸 다 드러내놓고 알렸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도 목이 콱 막히면서 눈이 시려왔다. 그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했던 한 남자배우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잘 울지 않는 사람인데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내 약점을 다 드러내는 솔직함과 용감함 앞에서 존경과 감동이 올 수 밖에.
누군가가 사력을 다해 자신의 인생에 온 고난을 헤쳐나갈 때, 진심어린 지지가 가장 필요하다. 주변의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발버둥치고 노력하고 있다면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기를. 그래서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데 실낱같은 보탬이 되기를.
정직이야 말로 가장 큰 장점이고 미덕이라는 말이 종이 위의 활자가 아니었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은 진실에서 왔다.
최영지 디지털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