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고 마을에는 홀로 남은 어르신들의 불빛만 남는다. 수도권에 인구와 자산, 고부가가치 산업이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국가 전체 잠재성장률은 낮아지고 지방은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오늘날 지방소멸은 더 이상 통계 속 경고나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지방의 삶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 동력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국가기구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다. 지방시대위는 정부의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을 중심으로 산업·교통·교육·의료 등 부처별 정책을 초광역권 단위로 연결하고, 수도권 일극체제를 여러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다극체제로 전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권역별 성장산업과 인재를 키우고 60분 생활권을 구축하며 자치분권을 확대해 지방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그 목표다.
지방시대위는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다. 세종은 수도권에 집중됐던 행정기능을 분산시켜 균형발전의 이정표를 세운 곳으로, 행정의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종에 머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균형성장을 이끄는 심장은 균형성장의 절박함과 소멸의 위기를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제는 지방시대위의 위치를 국가균형성장 전략이라는 큰 틀 위에서 다시 검토하고, 핵심 정책 기능을 남부권으로 과감히 확장할 때다.
지방시대위가 세종을 넘어 부산으로 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5극 3특 전략에서 남부권 성장엔진의 중심이다. 한때 국가 산업화와 수출을 이끌었던 이 항만도시는 지금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제조업 구조 변화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항만, 금융·물류 기반, 해양과 조선·기자재 산업, 관광과 문화 콘텐츠까지 갖춰 여전히 남부권의 핵심 거점이다. 그만큼 부산은 지방이 마주한 위기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한민국 지방정책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부산에 균형성장을 이끄는 컨트롤타워가 자리한다면 정책은 서류 위의 구상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현실과 직접 호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부산 한 도시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부산은 다른 지방의 기회를 가져가는 종착지가 아니라 지역과 지역을 이어 기회를 넓혀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지방시대위의 본부는 부산에 두되, 권역별 분과와 현장지원단은 각 지역에 설치해야 한다. 부산에 본부를 두고 세종에는 중앙부처와의 협력사무소를 유지하며 주요 회의를 권역별로 돌아가며 개최한다면 부산은 동남권의 제조·물류·해양산업과 대경권의 첨단제조업, 충청권의 과학·바이오, 호남권의 인공지능·에너지·농생명, 강원·전북·제주의 특화산업을 잇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행정기관 하나의 위치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비수도권이 더 이상 지원의 대상이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결단이 될 것이다.
부산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부산항을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국내 컨테이너선 최초로 북극항로를 시범 운항해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함으로써, 부산이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관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산이 새로운 바닷길을 열었듯 정부도 지방시대위의 부산 이전을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선택지로 진지하게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이는 부산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전국의 지방도시가 저마다의 특성과 경쟁력을 살려 함께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지방시대위의 부산 이전은 대한민국의 중심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가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출발이 될 것이다. 청년이 고향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 지역대학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며, 국민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터전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꿈꾼다. 부산에서 밝힌 희망의 불빛이 전국의 모든 지역으로 이어져 어느 곳에 살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 지방이 다시 희망을 노래하는 위대한 항해가 시작될 것이다. 부산이 그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