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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출항해 북극해를 시범 운항 중인 선박. 해양수산부 제공 |
교실 벽에도, 여행사 유리창에도, 뉴스 화면과 스마트폰 화면에도 같은 모양의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유럽은 정중앙 위쪽에, 아프리카는 아래에, 그린란드는 북쪽 끝에 거대한 대륙처럼 부풀어 있는 그림.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세계의 ‘실제’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지난 9월 4일 UN 총회는 ‘지도 바로잡기(Correct the Map)’ 결의안을 찬성 164, 반대 1, 기권 6으로 채택했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토고가 발의하고 아프리카연합 54개 회원국이 밀어 올린 결의다. 면적 비교가 중요한 지도에는 ‘이퀄 어스’ 같은 등면적 도법을 쓰자는 권고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강제할 수 없는 영역, 곧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세계의 그림’을 겨냥했기에 오히려 더 무겁다. 결의안은 이 일을 인지적 정의이자 ‘기억에 대한 배상’이라고 규정했다. 아프리카의 토고 외교장관은 표결에 앞서 “공정한 세계는 공정한 지도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지도는 애초에 왜 그런 모양이 되었을까. 1569년 플랑드르의 메르카토르가 도법을 고안한 목적은 다름 아닌 ‘항해’였다. 각도를 정확히 보존해 나침반 방위 하나로 대양을 가로지르게 한, 철저히 바다를 위한 실용 도구였다. 그런데 이 항해용 도구가 450년 넘게 인류의 세계관을 지배하면서, 바다를 위해 태어난 지도가 육지의 위계를 고착시켰다.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의 14분의 1 크기인데 지도 위에서는 엇비슷해 보인다. 3000만 ㎢가 넘어 미국과 중국, 인도와 서유럽을 모두 합쳐도 담기지 않는 대륙이 한없이 작게 그려져 온 것이다. 언어와 기호가 인식을 빚어내듯, 지도 역시 결코 중립적인 재현이 아니다. 지도는 세계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세계를 주장한다.
이제 질문을 부산으로 돌려보자. 우리는 과연 어떤 지도를 보고 있는가. 한반도 남쪽 끝자락, 수도권 일극이라는 납작한 2차원 프레임에 스스로를 묶어두지는 않았는가. 등면적 지도에서 가장 극적으로 제 몸집을 되찾는 곳은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적도 인근의 대륙들이다. 아프리카는 인구 약 16억, 중위연령 19세 안팎의 대륙이다. 2050년이면 25억에 이르고, 세계 청년 네 명 중 한 명이 아프리카인이 된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전체로는 세계 인구의 80%가량이 여기에 산다. 왜곡이 걷히는 순간, 이 지역은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교역과 투자의 상대로 다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부산의 위상도 그러하다. 평면 지도 속 남쪽 끝 ‘지방 도시’라는 프레임을 벗고 지구본을 펼치면, 부산은 유라시아의 종점이 아니라 태평양과 인도양, 글로벌 사우스로 열려 있는 해양 관문이다. 지난해 2488만 TEU를 처리해 환적 물동량 세계 2위, 280여 개 항만과 이어져 있다. 홍해와 호르무즈가 흔들릴 때마다 선사들이 희망봉을 돌아가면서 아프리카 해안선의 전략적 몸값은 올랐고, 서아프리카 노선은 3개 루프에서 4개로 늘었다. ‘부산-탕헤르메드(Tanger-Med)-다카르·아비장’으로 이어지는 남방 축, ‘부산-제벨알리(Jebel Ali)-제다(Jeddah)-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인도양 축을 그려볼 만하다. 기후변화로 열리는 북극항로는 분명한 기회이지만, 계절성과 쇄빙 역량, 국제 정세라는 다양한 변수를 안고 있다. 하나의 항로에 도시의 미래를 전부 거는 것은 또 다른 단극주의다. 북쪽의 항로와 남쪽의 항로가 부산에서 교차할 때, 이 도시는 어느 한쪽이 막혀도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항로보다 먼저 놓여야 할 것이 있다. 결국 지도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이들이 새로운 항로의 선구자가 된다. 프랑스어와 아랍어, 스와힐리어로 현지의 법과 관습을 읽어내는 이들 없이 아프리카·중동 진출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부산에는 그런 인재를 길러온 대학과 연구기관이 있다. 아프리카·아랍 문화 주간이나 해양 문화 교류를 통해 “부산에 가면 아프리카와 중동을 만날 수 있다”는 감각을 심는 일은, 계약서보다 먼저 와야 할 신뢰의 인프라다.
올해는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다. 1876년 강제로 열린 항구가 150년 만에 세계 2위 환적항이 되었다. 지난 150년을 규정한 것이 메르카토르의 지도였다면, 다음 150년을 규정할 것은 실제 크기를 회복한 지도다. 그 지도 위에서 부산은 대륙의 끝이 아니라 태평양과 인도양, 북극해와 아프리카 해안선이 만나는 결절점이다. 같은 도시가 지도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보인다. 지도를 바꾸면 중심이 보이고, 중심이 보이면 항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