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국제신문 주필·편집국장, 이병주 문학 ‘상수’ 법철학 20대 후반에 기본 틀 완성

‘법률소설가’ 자질 갖춘 듯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6-09-27 17:16:36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필자가 몸담은 대학원의 연구모임에서 ‘오랜 신문’을 강독할 때다.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 문단 불세출의 대문호 나림(那林) 이병주가 젊은 시절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세 차례에 걸쳐 쓴 것(이하 ‘해당 글’)이다. 해당 연도와 게재 날짜를 따져 보니, 국제신보(현 국제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을 맡기 훨씬 전의 일이다. 진주농과대학(현 경상국립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던 무렵이다. 해당 글이 돋보인 것은 단지 국제신문과의 ‘인연’만은 아니다. 주제를 ‘인권옹호’로 잡았던 까닭이다. 그것도 신문 지면이라는 공론(公論)의 장에서….

나림이 해당 글을 쓴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대검찰관 출신 엄상섭 변호사가 다른 신문에 기고한 ‘신(新) 형사소송법과 인권옹호’라는 글에서 비롯됐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담았다. 엄상섭은 ▷고문과 협박에 의하거나 교묘한 유도에 의한 자백이 죄의 증거로 제공되지 않도록 할 것 ▷고문의 금지 규정을 둘 것 ▷인신 구속과 사유재산의 압수 및 인신·주거 수색에 대해서는 법관의 권한 아래에 둘 것 ▷범죄 수사를 위한 인신 구속의 기간을 엄중하게 제한할 것 등을 주장했다. 나림은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해당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21세기에도 통하는 내용이니 오죽할까…. 더욱이 엄상섭은 대한민국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을 이끈 ‘한국 형법의 아버지’로 불린다.

나림은 해당 글에서 자신의 학병 시절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여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에 나온 유명한 글귀를 대비시킨다. 작품 속에서 이반 카라마조프가 동생 알료사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내용이다, ‘한 명의 무고한 아이가 흘리는 피와 눈물로 세워지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를 용인하겠는가’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대목이다. 이에 덧붙여 나림은 일제의 학병으로 중국 양쯔강 남쪽 어느 마을에서 겪은 일을 떠올린다. 일본군 장교가 “게릴라 하나를 잡자면 양민 100명쯤 죽여도 할 수 없다”며 서슴없이 마을 사람들을 처단했던 그 기억이다. 그래서 나림은 “인권옹호란 자기 스스로를 모욕하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사회인으로서의 조건 충만이 되는 사회공약을 어기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인권은 최대한으로 옹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나림은 “민주주의의 진실한 적(敵)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식, 이에 따르는 일련의 행동”이라고 못박는다.

나림의 해당 글에서 더욱 주목하는 것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나림의 법(法) 철학, 그리고 그 밑바탕을 제공한, 학병 서사를 포함한 일제 식민지 조선 시절 지식인의 ‘모순적 위치’가 고스란히 담긴 점이다. 훗날 나림이 문학 작품에 녹여낸 작가정신의 기본 틀이 이 무렵 잡혀있었다는 얘기다. 그때 나림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나림 문학의 상수라고 할 휴머니즘과 법 철학에는 인권에 대한 중시, 부정한 법에 대한 비판, 악법의 무용성, 법률 만능주의 비판 등이 씨줄날줄로 엮인다. 그 결과물이 ‘내일 없는 그날’(1957), ‘소설·알렉산드리아’(1965), ‘예낭풍물지’(1972), ‘겨울밤’(1974), ‘철학적 살인’(1976), ‘거년의 곡’(1981), ‘그해 5월’(1984) 등이다. 그래서 나림은 ‘법률 소설가’로, ‘법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 깊은 작가’로도 불린다.

나림은 1950년 9월 북한 인민군의 감시 아래 문예선전대를 조직, 활동했던 부역 문제로 체포된다. 이어 1961년 5월 국제신보 주필과 편집국장을 겸직할 당시 중립화 통일론에 관해 쓴 논설로 필화를 겪으면서 2년 7개월여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 그런데 나림이 ‘법률 소설가’가 된 배경에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감옥 콤플렉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옥중 체험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림은 이미 20대 후반 ‘법률 소설가’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아도 될 듯하다. 옥중 체험이란 자전적 서사는 ‘법률 소설가’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가속도를 붙였을 것 같다.

지난 1일은 국제신문 창간 79주년이었다. 또 지난 19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에 자리 잡은 이병주문학관에서 ‘2026년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가 열렸다. 이 행사는 이병주기념사업회와 국제신문이 해마다 함께 주최하고, 하동군·경남스틸·BNK금융그룹이 후원한다. 올해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중국의 황누보(黃怒波·70) 작가(시인·소설가)가 ‘문학창작, 세계문화유산, 고산 등반, 기업가, 그리고 생의 의미’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림 문학 세계에 관한 고찰은 갈수록 깊고 풍성해진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9. 9방호복·지뢰덧신 살펴보는 국회 국방위원들
  10. 10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9. 9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0. 10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4. 4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4. 4“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5. 5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6. 6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김해 아이돌봄 대기 5개월…부모 속타네
  9. 9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0. 10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3. 3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4. 4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존엄 보장하는 부산형 청년보장제 되기를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AI 설계 어선
부캉이가 띄운 북항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법과 원칙 외면한 시유재산 관리, 책임 물어야 한다
금고 선정, 금리 경쟁 넘어 지역자금 선순환이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북항 찾은 상어 ‘부캉이’와 잊힌 갈매기 ‘부기’
‘지방시대위’ 부산 이전, 다시 뛰는 대한민국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6·3 부산시장 선거, 부동산 정책의 길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청년·노인 예산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