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조업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전문대학이다. 그 뿌리는 1949년 설치된 초급대학이다. 이후 중졸 후 5년을 배우는 고등전문학교와 2년제 전문학교가 생기며 여러 갈래로 나뉘었던 단기 고등교육기관들이 1979년 전문대학으로 일원화됐다.
전공의 폭도 짐작하는 것보다 넓었다. 공업계와 보건계가 두 축이었다. 방사선과 치위생과 같은 보건기술 분야가 이 계보에서 자리를 잡았다. 간호는 간호학교에서 간호전문학교를 거쳐 1979년 간호전문대학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전문대학 간호학과는 4년제로 학사학위를 수여한다. 지금은 고숙련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전문대학에 전문학사에 더해 전공심화 학사, 전문기술석사 과정까지 갖췄다.
우리나라 압축성장의 현장은 이들이 채웠다. 산업화의 주역으로 성장한 고숙련 기술인이 나왔고 창업으로 자기 사업을 일군 기업가도 많다. 이 대열에 직업계고등학교도 있다. 공업고와 상업고를 나온 청년들이 산업 현장의 기초를 다졌고 그 역할은 지금도 이어진다. 다만 산업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현장이 요구하는 수준이 달라졌다. 설비를 다루는 일에 데이터와 제어, 인공지능이 겹쳐 들어왔다. 일관된 직업교육 트랙으로 이어진다면 한층 전문성 높은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관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학벌주의가 기술의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그 끝에 나타난 일이다. 미국이 보여준 장면은 뼈아프다. 제조를 다른 나라에 맡기는 동안 기술인력이 서서히 사라졌고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뒤늦게 배를 만들 사람을 길러내려 하지만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숫자가 말해준다. 2025년 공시 기준 전문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72.1%로 일반대학 62.8%보다 높다. 더 눈여겨볼 것은 그다음이다. 졸업생이 학교가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는 동일지역 취업률이 전문대학은 59.0%, 일반대학은 47.0%다. 지역에서 배운 청년이 지역에 남아 일한다는 뜻이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고향에 남은 청년들이 누구인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요즘 블루칼라의 대우가 화이트칼라를 점차 앞지른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지난여름 내내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협상이 기사가 됐다. SK하이닉스에서는 생산직 노조 조합원 1만 50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해 회사가 제시한 지급 방식을 부결시켰다. 삼성전자에서도 성과급 산정 방식이 사회적 논의로 번졌다. 그 기사들을 읽으며 웃게 됐다. 현장의 대우가 그만큼 올라왔다는 뜻이고, 그 자리에 전문대학 졸업생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부산도 다르지 않다. 여러 산업이 있지만 미래 성장동력은 제조업에 근간을 두어야 하고 그 현장을 채울 사람은 이 도시에서 길러진다. 이 도시에서 배우고 이 도시에 남기로 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묻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아주는 눈길이면 충분하다.
전문대학들은 오늘도 기술인재를 길러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이 길을 선택하는 청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