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1945년 발표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유명한 문장이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 발생과 스탈린 독재 체제 과정을 ‘존스 패밀리 농장’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풍자한 우화소설이다. 혁명 이후 권력을 쥔 돼지 ‘나폴레옹’과 부역자들이 대중 조작과 프로파간다, 공포 정치로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비판한 소설이다. 스탈린의 독재를 풍자했지만 2026년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한다는 것과 교묘한 방법을 동원한 기만적 정치를 깨닫지 못하거나 방관하는 대중은 국가 권력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인간을 몰아내는 혁명을 완수한 동물들은 동물농장의 ‘헌법’인 7가지 계명을 선포한다. 그러나 기득권층인 돼지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필요에 따라 계명을 수정하고 대중을 세뇌시킨다.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는 계명에 ‘시트를 깐’이라는 문구를 추가한다.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에는 ‘지나치게’가,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에는 ‘이유 없이’가 붙는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형법 개정(법왜곡죄 신설), 형사소송법 개정(보완수사권 폐지·공소기각), 법원조직법 개정(대법관 증원), 헌법재판소법 개정(사실상 4심제인 재판소원제) 등 진영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위헌적 요소가 담긴 입법 행태와 흡사하다.
종국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대전제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뀐다. 나머지 6개 계명은 삭제되고 이 하나의 계명만 남는다. ‘더 평등하다’는 표현은 모순적 어법이지만, 기득권의 특혜를 정당화하는 의도를 담은 정치적 수사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의해 사회를 지탱해 온 법과 제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동물농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계명은 공소취소 논란을 연상시킨다. 대통령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의 공소취소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우리 헌법 제11조 제 1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헌법 정신과 조항에 의거하면 기소가 잘못됐다면 다른 국민처럼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면 된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 앞에서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장 큰 관심사는 공소취소와 연임 개헌에 대한 명시적인 입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연임할 생각이 없다”며 앞서 밝힌 모호한 입장과는 달리 명확한 의사를 표명했다.
문제는 공소취소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이 지난 4월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법과 관련, 특검이 재판의 공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삭제하고 검찰의 조작기소 진상규명에만 집중하도록 특검법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국회에 당부했다. 특검이 검찰의 조작 기소를 밝혀내면 공소취소를 강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개정 형소법의 또 다른 뇌관은 공소기각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에 가려졌지만, 개정 형소법은 검찰의 중대한 위법 수사나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 판사가 공소를 기각한다는 사유를 슬그머니 추가했다. 최근 법리보다 진영 논리에 따른 정치적 판결을 남발하는 일부 판사의 행태를 볼 때 특검의 조작기소 주장을 근거로 판사가 공소기각을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많은 국민은 민주당이 입법한 조작기소 특검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검찰의 조작기소 ‘거리’를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공소청의 공소취소나 우회로인 판사의 공소기각을 강행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대국민 기자회견의 반응을 묻는 다수의 여론조사에서는 부정 평가가 50% 후반대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조작기소 특검법을 처리하려다 악화한 여론에 10월 국정감사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포기가 아니다. 지난 2일 출범한 공소청·중수청은 수장도 뽑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국민의 ‘비가역적인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계명’을 바꾼 민주당과 이 대통령은 이제 와 후과를 걱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민생과 외교·안보 등 국정보다는 민심과 이반된 초법적 행보를 강행한다면 바닥난 국정 동력의 복원이 요원한 것은 물론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달 23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멈춰선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는 응답이 무려 77.9%를 기록했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