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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작문 교과서. 필자 제공 |
계산해 보니 중학교를 졸업한 지 올해로 꼭 반세기가 된다.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학업과 군 복무를 마치고 결혼하여 자식 낳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세파를 건넜다. 남자로 태어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는 거의 치른 셈이다. 이젠 퇴직하여 책을 가까이하려고 애쓰며 간간이 시와 수필을 쓰면서 하루하루 무탈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교과서는 버리고 없다. 공부하면서 부모의 피 같은 돈으로 산 참고서 등 쓰임을 다한 책은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진학하면 수준에 맞는 새 책으로 공부해야 했기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는 삶에 지식을 준 내 몸의 한 부분 같아서일까! 책을 버리고 난 후의 기분은 조금은 섭섭하고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나는 아직 버리지 못한 교과서가 있다. 중학 작문 1, 중학 작문 2, 중학 작문 3이다. 중학교 전 과정의 국어과 수업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참작하여 편찬한 국어과 작문 교과서다.
굳이 버리지 못한 이유를 밝히자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 책 속에 있었기에 지금까지 보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문 책은 지나간 달력을 찢어 책 꺼풀을 반듯하게 입혀서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반세기가 지난 책이지만 상태가 깨끗한 편이다. 책의 두께는 얇고 색깔은 떨어진 가을 낙엽처럼 바랬으나 지혜가 가득한 노인의 얼굴 같다. 책을 펼치면 예쁜 삽화가 그려져 있고 단원의 내용에 따른 예문이 있어 글을 읽고 배우기가 쉽다. 다만, 활자가 작아 읽기에 약간 불편할 뿐이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에 따른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엮은 책으로 교과목 공부에 기본이 된다. 얼마 있지 않아 수능시험이 있다. 수능 최고 득점자 인터뷰를 하면 하나같이 “교과서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고 말한다. 이는 기본에 충실했다는 말이며 교과서 공부가 주요했다는 일침이다. 바야흐로 수험생은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야 할 때다.
현재 중학교 교과에는 작문 수업이 없는 것으로 안다. 작문 수업은 단순한 글짓기를 넘어 창의력과 이해력을 키워주기에 필요하다. 작문은 생각하는 힘으로 체화한 글이다. 그러므로 글의 실체는 자연히 자신의 본모습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학생이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풀지 못한다고 한다. 작문 수업을 받았다면 이랬을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1학년 과정에는 글과 생활, 구상과 표현, 감상문, 문집 만들기 등이며, 2학년 과정에는 바른 표현, 시와 창작, 글 다듬기 등이고, 3학년 과정에는 문학과 인생, 수필과 기행문, 창작의 즐거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를 뒤적이다 보면 어떤 때에는 머리를 치고 가는 깨우침과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준다.
시와 수필을 쓰다 보면 ‘무엇’을 쓸 것인가 하고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러면 중학 작문 교과서를 펼친다. 교과서에는 ‘무엇’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우주 자연의 가지가지가 다 이 무엇에 해당되고, 그 우주 자연을 보고서 느껴지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이 무엇에 해당된다’고 써놓았다. 이 문장을 읽고 주위를 둘러보면 쓸거리가 보이고 글의 실마리가 풀린다.
중학 작문 3에 있는 ‘문학의 정의’를 책에 있는 그대로 옮겨보면 ‘문학은 우리 인생의 메마르고 거칠어진 마음에 윤택한 기름과 용솟음치는 힘, 그리고 아늑하고 푸르른 꿈을 부어주는 마음의 양식이기도 하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가을이 깊어 가는 계절로 독서와 더불어 문학과 함께하는 시절을 보내면 어떨까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책은 버리지 못하고 소장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시집이나 수필집, 소설이나 수상록, 인생에 도움을 준 지침서, 선물 받은 책 등 더러 있을 것이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소장하고 있는 책이 없다면, 빨간 떡볶이처럼 익어가는 이 가을에 찾아 읽고 소장해 보자. 그럼 작은 소망 하나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