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발레화’. 사실 이 말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중의 클래식화’라는 말에서 떠올려 본 생각이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관한 질문에 그는 친숙함이나 장르 융합을 통해 클래식을 대중에 맞추기보다는, 대중이 클래식의 본질을 좀 더 느껴보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건넸다. 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유전자를 지닌 발레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발레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발레화’.
오늘을 사는 클래식 예술가에게 대중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어렵고 낯설다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공연에 해설을 곁들이고, 익숙한 음악을 사용하고, 공연장을 벗어나 관객을 찾아간다. 발레도 예외는 아니다. 1997년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는 객석 정원의 두 배가 넘는 관객이 몰릴 만큼 호응을 얻으며 대중화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발레를 접할 기회는 꾸준히 넓어져 대형 발레단의 클래식 레퍼토리를 지금은 부산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지역 대학 무용과를 비롯한 전문교육의 기반은 축소되는 반면, 발레는 오히려 취미와 건강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공연장 밖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접근권에 집중했던 문화민주화에서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되는 문화민주주의로 정책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예술계에는 ‘향유’라는 용어가 부상한다. 그런데 정책 속 익숙하게 쓰이는 ‘향유’라는 말은 생각보다 모호하다. 사전적으로는 ‘누리어 가짐’을 뜻하지만, 공연을 접하고 참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향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 예술을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도 향유의 과정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공연장에서 종종 흥미로운 장면을 본다. 화려한 남녀 2인무에서 발레리나가 높이 들어 올려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어김없이 큰 박수가 나온다. 기교의 화려함에 감탄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역시 발레를 만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기교 너머에서 발레를 읽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때론 음악과 움직임의 감각적 조화를 음미하고, 시대의 미감이 현실 사회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아가기도 한다. 무용수의 몸을 문화사가 체화된 아카이브로 바라볼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더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발레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지금, 그만큼 대중이 발견하는 발레의 묘미도 다양해졌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 멜리사 클래퍼(Melissa R Klapper)의 ‘미국 발레 수업의 역사(Ballet Class : An American History)’가 조명하는 풍경에 눈길이 간다. 클래퍼가 주목한 것은 평범한 아이들의 ‘발레 수업’이다. 20세기를 지나며 전문 무용수의 영역이던 발레는 일상적인 방과후 활동이 됐고, 지역의 발레학원과 발표회, 각종 경연을 통해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가족문화로 자리 잡은 ‘호두까기인형’과 영화, TV 같은 대중매체도 발레를 친숙한 문화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발레가 대중화되는 방식이다. 발레는 더 많은 사람이 배우고 즐기는 문화가 됐지만, 동시에 발레 수업이라는 상품이 되고 발레리나와 튀튀, 토슈즈 같은 친숙한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가까워진 것은 ‘발레’ 그 자체였을까, 아니면 발레를 둘러싼 경험과 이미지였을까.
다시 정책으로 돌아와서 문화민주주의가 남긴 성취와 함께 그 이면도 생각해 본다. 누구나 문화를 향유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참여하는 즐거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무엇을 누리고 이해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그리 촘촘하지 않았던 듯하다. 좋은 공연을 접할 기회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할 기회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 문화민주주의가 ‘참여할 권리’를 넓혀왔다면 이제는 ‘깊이 향유할 권리’에 대해 정책도 대중도 함께 생각해 볼 때다.
문체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시행하는 대표적 공연예술 지역유통 지원사업들은 과거 중앙 하향식 공급에서 벗어나, 지역 공연 수요를 반영하고 소비자가 선택의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올해, 이 사업을 통해 부산에서 선보이는 작품 대부분이 클래식 발레라는 점도 흥미롭다. 대중적 수요가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발레는 이전보다 훨씬 친숙한 예술이 됐다. 그러나 가까워졌다는 것이 곧 깊이 알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발레의 대중화가 발레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었다면, 이제 그 거리를 반대편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발레가 얼마나 대중에게 다가갔는가가 아니라, 대중은 발레에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발레의 대중화’와 함께 ‘대중의 발레화’를 통해 예술을 넓고 깊게 누리는 삶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