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대전환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기존 자유주의 질서 붕괴로 모든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외교 등 전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사회적 갈등과 세대 지역 계층 이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신뢰가 추락해 사회 통합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이런 갈등을 넘어 적대적 양상을 띠고 있다. 정치는 원래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해 사회 통합을 확보하는 기술이었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증폭시키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정치인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지지층을 결집하는 언어를 택하고, 공공선보다 진영의 승리를 우선하는 듯 보인다. 정책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충성의 기준이 되고, 시민은 숙고하는 주권자보다 분노와 피로를 소비하는 관객이 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정치의 본래 목적은 무엇이며, 정치인은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이 질문에 깊은 통찰을 남겼다. 많은 사람이 그를 시장경제와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 사상가로 기억하지만, ‘도덕감정론’(1759)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탐구했다. 즉, 스미스 철학의 출발점은 경제가 아니라 도덕이었다. 그는 인간을 단순히 이기적 존재로 보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여기서 ‘공감(sympathy)’은 연민을 넘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은 국민을 향해 말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지지층에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 진영의 불안과 분노를 이해하기보다 무시하거나 악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는 순간 정치는 경쟁이 아니라 적대가 된다. 스미스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정말 국민 전체의 시선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는 인간 내부에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는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내면의 기준이다. 도덕적 인간은 감정이나 이익보다 ‘공정한 관찰자’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정치인에게 이것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 문제는 정책의 좌·우나 보수·진보의 차이가 아니다. 어느 진영이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상대의 잘못은 원칙의 문제이고 자신의 잘못은 상황의 문제로 설명한다. 국민 역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문제에 관대하고 반대편에는 가혹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스미스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자기편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공정한 관찰자는 “내 편이니까 괜찮다”는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더 깊은 자기 성찰이다.
또한 스미스가 경계한 것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었다.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사회 전체가 허영과 경쟁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봉사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이 되는 순간, 정치는 공공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 무대가 된다. 정치인의 언어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타협보다 충돌이 더 많은 관심을 얻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다. 극단적 발언은 즉각적인 지지를 얻지만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스미스는 인간 사회가 시장 이전에 도덕적 신뢰 위에 서 있다고 보았다. 신뢰가 무너지면 시장 거래도, 제도도, 민주주의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한국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다. 첫째, 상대를 설득 가능한 시민으로 보는 태도다. 둘째, 자신의 행동을 지지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눈으로 평가하는 습관이다. 셋째, 권력을 목적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해하는 윤리다. 시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스미스의 도덕 철학은 근본적으로 정치인 비판 철학보다 시민의 자기 성찰 철학이다. 정치가 거칠어진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정치인에게 절제보다 공격성을 보상해 왔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사람을 뽑는 제도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견제하며 공존하는 제도다. 정치의 품격은 제도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공감 능력, 자기 객관화 훈련과 공적 책임을 앞세우는 태도가 필요하다. 스미스가 오늘 한국 정치를 본다면 경제 성장이나 효율보다 먼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의 상실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시선에서 사회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