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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사관학교 통합보다 중요한 군의 헌법정신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  |   입력 : 2026-10-12 13: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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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지난 8월 5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가 과거 세 차례 쿠데타의 중심이었다며 “구조적으로 절대로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국군사관학교’ 추진을 주문했다. 지난 1일 제78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도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신속·과감하게 추진하고, 군에 의한 불법적 내란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고 쿠데타를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관학교의 명칭과 조직을 통합하면 군의 정치 개입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가. 사관학교를 하나로 통합한다고 해서 군의 정치적 중립이나 헌법적 책임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관학교의 간판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가치와 신념을 가르치고, 어떤 군인을 길러내느냐에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군인과 국가’에서 군의 정치적 권력, 군사적 전문성,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기준으로 민군관계의 다섯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제3유형과 제5유형이다. 두 유형은 모두 군의 정치적 권력이 낮고 군사 전문성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군은 정치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전문직업집단이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

두 유형의 차이는 사회가 군사적 가치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제3유형은 사회가 군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가운데 군이 높은 전문성을 유지하는 형태다. 헌팅턴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미국을 그 역사적 사례로 들었다.

반면 제5유형은 사회가 군의 역할과 국방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군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군의 정치 개입은 허용하지 않는 형태다. 그는 20세기 영국에서 이러한 경향을 찾았다. 다시 말해 군을 존중하는 것과 군이 정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면서 높은 군사 전문성을 요구하고, 동시에 군의 정치 개입을 경계하는 대한민국은 이 두 유형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은 이러한 제도적 원칙이 위기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되묻게 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대통령 파면 결정에서 비상계엄 선포와 군 병력 투입 과정의 헌법·법률 위반을 인정했다. 군이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은 평상시의 제도만으로 민주적 문민통제가 완성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를 군 전체의 전문성 부족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군사 전문성은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군사적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정치지도자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하며,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명령을 수행하는 책임까지 포함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명령의 적법성을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은 군 기강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업윤리를 완성하는 요소다.

여기서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의 공동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군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지휘·통제하고 군사력을 위법하게 사용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군사지도자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전문적 조언을 제공하고, 합법적 명령은 이행하되 위법한 명령에는 적법하게 대응해야 한다. 양자의 권한과 책임은 다르지만, 헌법과 법률을 수호할 공동의 책무는 같다. 민주적 문민통제는 정치권력의 헌법적 책임과 군의 전문적·법적 책임이 함께 실천될 때 확립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관학교 개혁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각 군의 특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각 군의 고유한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공동 교육과정과 교류를 통해 장교들의 헌법적 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다. 사관학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군의 정치 개입을 방지하는 필수조건이라고 볼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

시급한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사관학교 교육에서 헌법과 법치주의, 문민통제의 원리를 핵심 교육과정으로 강화해야 한다. 군인은 특정 정권이나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헌법과 국민에게 충성하는 공직자라는 사실을 교육과 평가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 둘째 군사 전문직업윤리와 위기 상황의 판단능력을 길러야 한다.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합법적 명령에 대한 충실한 복종과 위법한 명령에 대한 적법한 대응을 구별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 모두 헌법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정치권력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군 지휘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법치주의와 전문직업윤리를 지켜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과 규정이 있어도 양쪽의 책임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도는 공허해진다.

12·3 비상계엄의 교훈은 군의 조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군사관학교라는 새 이름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헌법적 가치와 판단능력을 갖춘 장교를 양성하고,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가 각자의 권한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하며 공동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강한 군대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군대가 아니라, 정당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는 군대다. 각 군 사관학교의 전문성을 유지·발전시키면서 헌법교육을 강화하고, 정치·군사 지도자의 헌법적 책임을 확립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민군관계가 나아갈 방향이다. 군의 명예는 간판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을 향한 충성에서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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