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북항친수공원 경관수로에 상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시민은 이 흑상어에 ‘부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놀랍다. 하루 2000명 안팎이던 공원 방문객이 추석 연휴에는 하루 14만 명까지 치솟았고, 이달 10일까지 127만여 명이 다녀갔다. 대전에서 딸의 손을 잡고 온 가족, 캐리어를 끈 외국인 관광객까지 수로 난간에 두세 겹으로 늘어섰다. 입장료도, 대형 행사도 없는 이곳에 어마어마한 사람을 불러모았다.
같은 시각, 바로 옆 북항 1단계 부지는 여전히 비어 있다. 2023년 토지 조성을 마쳤지만 랜드마크 부지 민간투자 공모는 잇따라 유찰됐다. 지금 논의의 중심도 항만공사의 직접 개발을 위한 법 개정, 돔 아레나 같은 대형 시설이나 3조가 넘는 사업비, 스포츠나 공연 일정 이외의 활용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땅은 비어 있는데 사람은 온다. 부캉이는 이 역설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여줬다.
돌아보면 북항을 둘러싼 논쟁은 늘 용도와 용적률, 어떤 시설을 몇 층으로 지을지에 머물러 왔다. 계획도면 위의 숫자는 정교해졌지만, 정작 시민이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비어 있었다. 부캉이는 그 빈칸을 시민의 발걸음으로 채워 보였다.
사람을 부른 것은 수천억 원짜리 건물이 아니었다. 이름 하나, 그리고 이야기 하나였다. 길이 50m의 구조 그물을 치고 바다로 내보내려 했지만, 부캉이는 그물을 넘어 다시 수로로 돌아왔다. ‘떠나지 않는 상어’라는 서사가 생기자 사람들은 매일 소식을 확인하고, 직접 눈으로 보려 북항을 찾았다. 아이는 상어를 보고 싶어 했고, 어른은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도시의 매력을 만드는 것은 수조 원의 건물보다 공간에 담긴 이야기라는 사실을 부캉이가 증명한 셈이다.
다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부캉이는 관광 콘텐츠가 아니라 먹이 활동조차 어려운 개체수 감소 위기종인 야생 생명이다. 몰려든 인파 앞에서 주차 혼잡, 야간 조명 논란 같은 빈틈도 드러났다. 우연이 만든 흥행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생명을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품격이다. 부캉이 이야기의 결말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부캉이가 떠난 뒤, 비어 있는 북항에 그 어떤 랜드마크보다 우선적으로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에 네 가지 관점을 살펴보자.
첫째, 북항만의 ‘이야기 자산’을 발굴해야 한다. 북항에는 개항의 역사, 피란수도의 기억, 산업화를 이끈 부두의 시간, 더 오래전에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대첩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서사를 공간 곳곳에 새기고, 원도심 골목과 바다를 잇는 이야기 동선으로 엮어야 한다. 안내판 몇 개가 아니라, 걷는 사람이 스스로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게 만드는 연출이 필요하다.
둘째, 소프트웨어를 먼저, 하드웨어는 나중에 채워야 한다. 빈 부지를 축제와 시장, 공연과 해양레저 프로그램으로 먼저 쓰고, 검증된 수요를 단계적으로 시설화하는 방식이다. 거대한 부지를 한 번에 완성하려다 유찰을 거듭하는 것보다, 쓰이는 땅을 하나씩 늘려 가는 편이 훨씬 빠르다. 사람이 모이는 땅이 다시 투자를 부른다.
셋째, 바다와 생명을 존중하는 콘텐츠여야 한다. 부캉이가 남긴 관심을 해양생태 관찰과 교육, 해양 보전의 메시지로 이어간다면 북항은 ‘해양수도’라는 구호에 걸맞은 정체성을 갖게 된다. 수로와 친수공간을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배우는 열린 교실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생명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바다를 아끼는 도시라는 이야기가 오래 간다.
넷째, 이야기를 기획하고 운영할 주체가 필요하다. 땅은 항만공사, 계획은 부산시, 법과 예산은 해양수산부로 나뉜 지금 구조로는 콘텐츠가 자라기 어렵다. 공간을 큐레이션하고 365일 운영하는 전담 조직을 세워야 한다. 해외의 성공한 수변 공간들이 공통으로 갖춘 것도 화려한 건물보다 꾸준히 프로그램을 짜고 사람을 맞이하는 운영 조직이었다.
어떤 시설이 들어서더라도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릇을 먼저 크게 빚어 놓고 무엇을 담을지 나중에 고민하는 순서로는 또 하나의 빈 랜드마크가 생길 뿐이다. 2028년 유엔해양총회까지 시간은 길지 않다. 부캉이는 우리에게 답의 방향을 알려주고 떠날 것이다. 이제 그 다음 이야기를 쓰는 일은 도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