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서 ‘필요’는 개인의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사회의 공동 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욕구’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복지 필요를 제도적으로 충족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복지의 ‘필요 원칙’이란 국민의 실질적인 필요를 기준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복지 재정을 한층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의료와 고용, 주거와 돌봄, 기초생활과 노후소득 등 재정이 지출되는 모든 복지 분야에서 ‘필요 원칙’을 확립하고 준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개혁 역시 끊임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원칙을 저버린 채 ‘포퓰리즘’에 빠져든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칼럼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복지의 두 분야에서만 그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의료 분야의 핵심 정책인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의 실태를 짚어본다. 법에 명시된 건강보험 제도의 본질은 국민의 생명 및 건강과 밀접한 질병·부상의 치료에 급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의 목적과 급여의 범위를 법률로 정한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제약 때문인데, 이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다. 올해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다가올 인구 위기는 건강보험 재정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 전망이다.
건강보험의 ‘필요 원칙’이란 제도의 취지에 맞는 법정 의료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 지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동시에, 건강보험의 보장률(전체 진료비 중 건보 부담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4.9%로, 주요 선진국의 85%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다만,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보장률 확대에는 건강보험료 인상 등 국민 부담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한편, 정치적 이득을 노린 건강보험의 ‘포퓰리즘’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제도의 본질에 어긋나는 급여 확대다. 이른바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탈모 치료 등 미용·성형 영역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하는 식이 그것이다. 둘째는 보장률 확대의 열쇠인 건강보험료 인상 추진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것이다. 이는 ‘필요 원칙’의 준수는커녕 재정 적자의 누적을 초래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게다가 이는 건강보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 재정과 국정의 전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망국적 병증이다.
다음으로 노후소득 분야의 핵심 축인 기초연금을 짚어보자. 현재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인 약 780만 명에게 지급되고 있다. 이 제도 역시 국민건강보험처럼 제도의 본질에 충실하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기초연금은 2014년 7월 도입 당시 월 최대 20만 원으로 시작해 2018년 25만 원, 2021년 30만 원으로 인상되었으며, 물가 상승분이 더해져 2026년 현재 월 34만9700원에 이르렀다.
기초연금의 ‘필요 원칙’이란 노후소득 지원이 절실한 노인에게 적정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당연히 소득 하위 계층에 지원을 더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예산 제약과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올해 기초연금 지출액은 23조1378억 원인데, 2030년이면 30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결국 기초연금의 ‘필요 원칙’을 지켜내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50%로 축소하고 추가 재원을 확보해서 이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기초연금의 ‘포퓰리즘’ 역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차별주의다. 과거 정치권을 맴돌았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자”는 ‘노인기본소득’ 주장이 대표적 사례다. 둘째는 ‘필요 원칙’에 기반을 둔 기초연금 개혁을 아예 외면하고 방치하는 행태다. 수급 대상을 소득 하위 50%로 좁히고 급여액을 늘리는 시급한 개혁을 정치적 지지 이탈이 두려워 미루는 게 그것이다. 이는 개혁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표 계산에 눈이 멀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갉아먹는 전형적인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탈모 치료의 건보 적용이나 무차별적 노인기본소득 지급처럼, 표를 얻기 위해 ‘필요 원칙’을 깨뜨려가며 재정을 마구잡이로 살포하는 것은 쉽게 눈에 띄는 포퓰리즘이다. 그런데 건강보험과 기초연금의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는 개혁, 즉 ‘국민 부담을 수반한 재정 확충’ 개혁을 외면하는 포퓰리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해악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후자가 더 악성이다. 마땅히 해야 할 구조 개혁을 방치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통째로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포퓰리즘뿐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는 ‘직무유기형 포퓰리즘’까지 매섭게 감시하기 위해, 이제 유권자인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