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막 한가운데 조성하는 초대형 미래도시다. 그 중심에 ‘더 라인’이 있다. 사우디 북서쪽을 가로질러 길이 170㎞의 초대형 빌딩벽을 세우는 계획이다. 수도 리야드 한가운데 들어설 ‘무카브’는 가로 세로 높이가 400m로 똑같은 정육면체 건물이다. 바다 위 물류허브 ‘옥사곤’, 사막의 스키장 ‘트로제나’도 예정되어있다. 지극히 초현실적이지만 석유부국 사우디이기에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의심받지 않았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중동의 스트롱맨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후 오일머니에 기반한 자본력에 미국의 정치적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기세가 등등했다. 해외에서 반정활동을 펴던 언론인을 중인환시리에 암살했지만 누구도 강력하게 비난하지 않았다. 빈 살만의 냉혹한 철혈군주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대항하는 LIV 골프를 창설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구단을 인수했다. 2034년 하계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개최권도 가져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2030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가 부산이 아닌 리야드에 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 3위 군비 지출국인 사우디가 일개 반군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흔들린다. 이달 들어 리야드 공항을 비롯해 주요 석유시설과 항만이 후티 반군의 드론과 미사일에 수십 차례 공격당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났다. 연간 112조 원의 국방비를 쏟아부어 구축한 수십억 원짜리 미국산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반군의 저가 자폭 드론과 미사일에 힘없이 뚫렸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중동의 사자로 여겨지던 사우디의 실력이 국제사회에 발가벗겨진 것이다.
‘119 대 29’는 3년 전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리야드와 부산이 받은 충격적인 격차의 득표수다. 자본에 반응하는 아프리카 회원국이 리야드에 몰표를 던진 결과라고 우리는 애써 자위했었다. 그러나 올 들어 네옴시티, 더 라인, 무카브가 자금 조달 어려움 등으로 줄줄이 중단됐고 후티 반군과의 전쟁이 본격화되자 축구 골프 테니스 관련 국제대회마저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내년 초 아시안컵 축구경기도 불투명하다. 이 상태라면 부산에 굴욕을 안겼던 리야드 엑스포가 예정대로 치러질지 미지수다. 막강한 오일머니로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