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2028 세계디자인수도(World Design Capital, WDC)’를 준비하고 있다. ‘포용적인 도시, 참여하는 디자인(Inclusive City, Engaged Design)’을 내세우며 디자인을 시민 삶과 도시 문제를 함께 다루는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부산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가 성인을 비롯한 건축가와 디자이너, 행정가와 전문가만일 수는 없다. 어린이도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어린이는 미래의 시민이기 이전에 부산의 골목과 놀이터, 시장과 바다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산타워와 광안대교를 알려주고 바다와 갈매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도시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부산타워는 꼭 지금처럼 생겨야 할까?” “이 놀이터는 왜 이런 모습일까?” “부산에 아직 없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이 달라지면 부산은 외워야 할 도시에서 상상하고 바꿔볼 수 있는 도시가 된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디자인 놀이(Design Play)’로 바라본다. 디자인 놀이는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활동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림과 모형, 재료와 이야기로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아이에게 빈 상자는 자동차이자 집이고 우주선이다. 어른이 ‘이것이 무엇인가’를 볼 때 아이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상상한다. 아이는 만들고 실패하고 고치며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를 찾는다. 나는 이를 ‘가능성 형성(possibility shaping)’으로 해석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조금씩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 힘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AI는 이미 글과 그림을 만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답을 얻는 일은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는 인간의 가치와 판단에 달려 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보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런 힘은 어린 시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만들어보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경험에서 자란다. ‘나는 무엇을 만들까?’라는 질문이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로 확장될 때, 아이는 세상을 새롭게 상상하는 존재를 넘어 타인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시민으로 성장한다. 어린이의 상상을 단순한 놀이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2028 세계디자인수도 행사가 끝난 뒤 부산에는 무엇이 남아야 할까? 새로운 건축과 공간, 성과와 기록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오래 남아야 할 것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질문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부산의 아이들이 두 가지 믿음을 갖길 바란다. “세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믿음은 아이들이 주어진 도시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어쩌면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이 미래세대에 남길 가장 중요한 디자인은 완성된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부산은 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