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대학 졸업 후엔 누군가 나의 선배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본 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오래 일한 사람들도 선배라기보다는 각각의 정체성으로 읽었다. 그들 대부분은 ‘감독님’이거나 ‘교수님’ 혹은 ‘대표님’이었다. 언젠가 현장에서 학연이 없는 데도 다른 사람을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본적이 있긴 한데, 경험이 많다고 갑자기 선배가 된다는 것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선배로 부른다니. 생각만해도 오글거렸달까.
작년부터 해온 부산영화 정책 스터디가 지속되면서 나는 정책 활동에 더 깊숙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정책을 제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힘을 보태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문화 분야 타운홀 미팅에, 나는 영화 시민으로서 참석했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문화 기본도시’를 선언하고 민선 9기의 문화예술 방향성에 대해 브리핑했다. “창작 기반을 다지고, 사는 곳 가까이에서 문화를 누리고, 문화산업으로 이어지는 길을 뚫어 생태계를 선순환 시키겠다”고 말하며, 그 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거버넌스를 강조했다.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바로 그 이야기였다. 문화 관련 기관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협의체를 만들고,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살피겠다는 거였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전후해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영화인들은 지역 영화생태계의 문제를 직접 진단하고 정책을 제안했다. 영화인이 정책 수혜자나 의견 제출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을 함께 만드는 주체가 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현장이 정책의 주체가 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난 10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포럼 ‘지역영화의 새로운 거버넌스’는 바로 그 지점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기조발제를 맡은 장석류 인천대 교수는 거버넌스를 ‘기구가 아니라 힘’으로 이야기했다. 여러 조직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힘인 거버넌스가 무엇으로 커지고 무엇으로 꺾이는지를 묻고 답했다. 그 힘은 목적 권한 제도라는 세 축으로 나눠진다. 목적은 참여한 조직들이 그것을 각자의 연간 계획서에 자기 언어로 옮겨 적을 수 있을 때 힘이 된다. 권한은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가 분명할 때, 그리고 정하는 쪽과 그것을 해내는 쪽이 함께 앉아 있을 때 작동한다. 제도는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규칙이고, 행정의 실무자와 현장의 활동가를 각자의 조직으로부터 지켜 주는 방패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었다.
토론은 부산 이야기로 이어졌다. 부산은 거버넌스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쪽이다. 발제를 토대로 보자면, 제도는 있지만 목적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거버넌스를 공공화했기에 현장의 목마름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요즘 나는 영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선배라는 존재를 느낀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특정 대상이 있다기 보다 지금의 정책을 보면서 그 흔적을 느낀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그냥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행정이든 교수든 연구자든. 가끔 간담회에 참석해 내가 처한 현장의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 다음 자리를 메우는 누군가가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때까지 만든 모든 것들 역시, 과거의 누군가, 그러니까 선배들이 제안하고 요구한 것이었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 또한 이러한 역할을 다른 누구에게 마음 편히 위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이따금씩 아찔하게 했다.
누가 거버넌스의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중요한 것은 대표성이 아니라 당사자성이라는 답이, 그날 토론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하고 객관적 데이터를 분석해서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을 행정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영역에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 비전과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당사자들이다. 하장호 정책위원장은 제도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사람과 관계였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그랬듯이 앞으로 부산의 10년을 함께 버틸 친구들을 찾아 나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