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문미경 동서대 교수·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학장

  • 문미경 동서대 교수·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학장
  •  |   입력 : 2026-10-25 18:36:05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학기 기말고사 채점을 생성형 AI 모델인 클로드에 맡기니 5, 6시간 걸리던 작업이 단 30분 만에 끝났다. 나름대로 세밀한 채점 기준을 세우고 항목별 점수를 산출하도록 지시하자, 정량화된 점수와 분석 결과가 순식간에 산출됐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채점 결과를 보는 순간, 편안함 대신 학생들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했는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이전에는 답안지 곳곳에 남겨진 메모와 쓰다 지운 흔적, 땀으로 쭈글쭈글해진 종이를 보며 학생들이 답을 쓰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 채점은 그 모든 고민 과정을 깔끔하게 도려낸 채 단순 정량적 수치만을 남겨 놓았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대학 강의실의 시험 채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전환과 AI 전환의 물결 속에서 사회 전반의 소통과 평가 방식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최근 입시를 앞둔 대학가에서는 “AI 를 통한 질의응답이 늘어날 것이므로, AI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의 문서 구조를 텍스트 중심으로 개편하고 시각 자료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연구개발 및 재정지원 사업 분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제안서를 신속하게 검토하고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AI 기반 자동 검토 체계의 도입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보고서도 이미지를 배제하고 텍스트와 표 중심으로 작성하라는 지침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업의 복잡한 목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읽는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돕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거쳐 시각적 그림과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넣었다. 글만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사업의 비전과 혁신성, 그리고 추진 의도를 한 눈에 보여주기 위한 정성이었다. 그런데 이제 AI가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정성 어린 그림들을 지우고, AI가 해석하기 쉬운 텍스트로만 보고서를 채우라는 요구를 받는다. 기술은 인간의 소통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함에도, 정작 우리는 인간의 표현 방식을 기술의 입맛에 맞춰 거꾸로 조정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과연 그 글에 담긴 의도와 진정성까지 함께 읽어낼 수 있을까? 현재의 생성형 AI는 텍스트 이미지 도표를 함께 이해하는 멀티모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텍스트에 담긴 맥락과 기획자의 의도,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직관적 의미까지 완전하게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AI가 사업계획서나 시험 답안을 평가하는 구조에서는 기계가 학습한 패턴, 키워드 출현 빈도, 형식적 완성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피평가자들 역시 깊이 있는 고민보다 평가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식 키워드 조합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AI 기술을 활용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거나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성을 높이고 표준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데 있어 AI는 훌륭한 보조 도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평가의 근본적인 목적은 기계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과 사업의 참된 가치를 올바르게 발굴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AI가 제공하는 분석 결과는 참고하되, 그 너머의 맥락과 의도를 판단하는 과정은 반드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오히려 AI를 통해 1차 검토와 단순 채점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였다면, 그만큼의 자원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성적 평가에 투자해야 한다. AI가 발견한 논리적 허점이나 과장된 지표를 바탕으로 평가자와 제안자가 충분히 토론하는 심층 면접형 평가, 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실행 역량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직접 확인하는 현장 검증형 평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AI가 채점표를 30분 만에 뱉어내고, AI를 위해 보고서의 그림을 지워야 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AI로 확보한 시간과 비용을 텍스트 뒤에 숨은 사람의 고민과 땀방울 그리고 가치를 읽어내기 위한 인간 평가자로서의 책임에 쏟아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평가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평가자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시대. 그것이 AI 시대의 평가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3. 3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4. 4“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5. 5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6. 6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7. 7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8. 8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9. 9[국제칼럼]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10. 10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1. 1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2. 2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3. 3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4. 4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5. 5주진우 "김혜경, 유명 프로골퍼와 황제골프" 민주 "황당무계 소설" (종합)
  6. 6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7. 7‘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8. 8전재수 "지광 스님에게 국제신문 정상화 촉구 서한문 보낼 것"
  9. 9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10. 10[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다시 하락해 35.3%…민주 36.0%·국힘 42.6%
  1. 1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2. 2전기료 밀린 홈플러스…한전 ‘단전 예고’(종합)
  3. 3“관광수익 주민에 환원해야 지역활력”…글로벌 20개 도시 리더들 한목소리
  4. 4BNK금융 3분기 누적순익, 작년보다 19% 감소
  5. 5음악 들으며 북항친수공원 걸어요
  6. 6부산 온 세계 해사인 “안전·친환경 실천”
  7. 7[한 손 뉴스] S/W 실행 환경 ‘Node.js’, 서버 해킹 보안 취약 경고
  8. 8국민은행 해킹 정보유출 119명→2210명 확대(종합)
  9. 9국내 위성기술로 인니 해양환경 관리역량 키운다
  10. 10부산신보 ‘민생안심 협약보증’ 한 달 만에 1000억 돌파
  1. 1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2. 2“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3. 3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4. 4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5. 5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6. 6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7. 7관객 춤췄다고 영업정지 ‘오방가르드’ 두 달만에 재개장(종합)
  8. 8시민단체 ‘국제신문 지키기’ 연대 나섰다…부울경 넘어 수도권 언론도 조명
  9. 9철새도래지 길냥이 급식소 분쟁, 항소심도 “추가 설치 불허 적법”(종합)
  10. 10日 주 20시간法 만들자 알바앱 급성장…편법 단기고용 판쳐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3. 3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4. 4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5. 5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6. 6롯데자이언츠 새 사령탑 ‘NC 우승 감독’ 이동욱…단장에는 이택근 선임
  7. 7‘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8. 8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9. 9은퇴 앞둔 최민정, 시작부터 금빛질주
  10. 10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프랑스를 망친 결정
AI가 찾은 보안 구멍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동행명령장 발부된 지광 스님 회생에 동의하라
이주노동자 안전 사각지대, 제도 개선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이불 킥’의 순간에 도움 될 심리학 지식 한 스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