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스타펀드는 대한은행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매각 지연을 이유로 한국 정부에 5조 원 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을 제기했다. 현재 최종 판결을 앞뒀고 우리 정부가 패소하면 그 배상금은 국민 세금으로 물어야 한다’.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정지영 감독의 2019년 영화 ‘블랙머니’ 엔딩자막이다. 극 중 스타펀드는 론스타, 대한은행은 외환은행을 가리킨다.
론스타 사태는 IMF 외환위기 후 세계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국 금융의 취약성을 드러낸 단적인 사건이었다. 투기성 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무기력하게 전락한 우리 금융시장의 민낯은 큰 충격을 줬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사모펀드’를 온 국민이 알게 될 정도였으니 사회적 파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비싼 값에 되팔고 나가 ‘먹튀’ 논란을 빚었다. 당시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지분 51%와 경영권을 고작 1조3834억 원에 사들였고,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4조7000억 원의 차액을 챙겼다. BIS 자기자본비율 조작을 통해 론스타에 헐값 매각했다는 배임 혐의가 있었으나 처벌된 은행 책임자나 관료는 없었다.
론스타가 한국에서 철수했다고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2012년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미뤄 손해를 봤다며 ISDS 제소를 했다. 1차 판정에선 론스타 측이 일부 승소했으나, 작년 말 이 판정이 취소돼 우리 정부가 완승을 거뒀다. 혈세로 론스타에 배상금(4000억 원)을 주지 않아도 돼 영화가 남긴 우려는 불식된 셈이다. 세금 분쟁은 또 다른 불씨였다. 론스타는 법인세·지방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이 2017년 과세 처분을 취소하는 확정 판결을 내리자 바로 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1600억 원대 부당이득금 반환(세금 환급)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까지 이어진 9년간의 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2일 서울고법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인세 부과 처분이 취소되더라도 공제·충당된 원천징수세액의 환급청구권은 원천징수의무자(외환은행 등)에 귀속되지, 론스타에 있지 않다는 취지였다.
세금 반환 리스크는 털어냈다고 볼 수 있으나, 론스타가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 국부를 빼갈지 모를 일이다. 지난 23년간 한국에 혹독한 시련과 막대한 ‘수업료’를 안긴 론스타와의 지긋지긋한 악연이 이제는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