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70대 여성은 배변할 때마다 과도하게 힘을 줘야 했다. 변을 보고 나서도 뒤가 묵직하고 잔변감이 남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의를 느껴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속옷에 변이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항문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항문내압검사에서 괄약근의 압력은 정상이었다.
항문을 조이는 힘은 정상인데 왜 변이 샐까? 항문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역할이 있다. 평소에는 변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닫혀 있어야 하지만, 배변할 때는 적절하게 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항문과 골반의 여러 근육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항문을 조이는 힘은 정상이어도 배변할 때 근육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변을 시원하게 내보내지 못한다. 이처럼 변이 나가는 길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변비를 ‘출구폐쇄 변비’라고 한다.
문제는 배출되지 못한 변이 직장에 남으면서 시작된다. 변이 오래 머물면 수분이 흡수되어 점차 딱딱해지고, 배출은 더욱 어려워진다. 환자는 반복해서 힘을 주고, 항문이 붓거나 불편해지기도 한다. 잔변감과 뒤무직 때문에 자꾸 화장실을 찾지만 시원하게 배변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직장에 딱딱한 변이 쌓였다고 위쪽에서 내려오는 변까지 모두 딱딱한 것은 아니다. 직장에 오래 머물러 굳어진 변이 출구를 막으면, 끈적하거나 묽은 변이 그 주위의 틈을 따라 흘러나올 수 있다. 찌꺼기에 막힌 배수구 틈으로 물이 새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범람형 변실금’이라고 한다. 변비가 심한데도 묽은 변이 새는 역설이다.
만성 변비가 있는 소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변을 참는 습관 등으로 변이 쌓이고 굳으면 그 주위로 묽은 변이 샐 수 있다. 이때 아이를 야단치기보다 부모의 사랑이 담긴 관심과 칭찬을 통해 규칙적인 배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약물치료와 함께 2~3주간 아이와 배변 훈련을 꾸준히 하면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분변이 정체된 상태에서 지사제를 사용하면 오히려 변비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속옷에 변이 묻는다고 모두 범람형 변실금은 아니다. 배변 후 직장이나 항문관에 남은 소량의 변이 뒤늦게 묻어나는 것을 ‘변지림’이라고 한다. 불완전 배출 외에도 항문괄약근이나 직장의 감각 기능 이상이 관여할 수 있다. 변이 샌다는 증상만으로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런 환자 중에는 70대 여성이 많다. 오늘날 70대에도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적지 않지만, 골반 안에서는 출산과 폐경, 노화의 영향이 오랜 세월 쌓일 수 있다. 비만이나 당뇨병 등이 더해지면 골반의 지지조직과 근육, 신경 기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항문내압검사나 신경 기능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없어도 배출장애는 있을 수 있다. 항문을 조이는 힘이 정상이라고 배변 기능까지 정상인 것은 아니다.
배출장애가 지속되면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고, 외출이나 사람 만나는 일도 부담스러워진다. 언제 변이 묻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외출을 피하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기도 한다. 이러한 걱정이 오래 이어지면 우울감과 사회생활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한 변비로 여겼던 문제가 일상의 자유를 빼앗고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다.
치료는 변이 왜 새는지 구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괄약근의 기능뿐 아니라 변의 굳기와 배변 습관, 배변 후 잔변과 분변매복 여부를 살펴야 한다. 분변매복이 있다면 먼저 정체된 변을 제거하고, 배변 시 근육의 협응에 문제가 있다면 배변 훈련이나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고려한다.
변비와 변실금은 서로 반대되는 병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하나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참지 못해서 새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내보내지 못해서 새는 경우도 있다. 비워야 할 것이 남아 있으면 때로는 넘쳐흐른다. 변이 새는 이유를 알려면 먼저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