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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유경혜 기획자가 마련한 전시공간 '프렉티스 유기력'. 방기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모습이다. 프렉티스 유기력 제공 |
지난 9월부터 부산은 줄곧 ‘미술 축제’의 장이었다. 2026부산비엔날레(8월 29일~11월 1일)가 각국 예술가의 ‘불협하는 합창’을 보여줬고, 2년여 간의 리뉴얼 공사를 끝낸 부산시립미술관이 새로운 모습과 전시로 시민 곁에 돌아왔다. 부산 미술계의 두 메가 이벤트에 맞춰 지역의 크고 작은 미술 공간도 잇따라 전시를 열어 풍성한 ‘미술 식탁’이 차려졌다.
이 가운데 유난히 생기 넘치는 현장이 눈에 띄었다. 부산 중구 중앙동 원도심의 옛 공동체를 찾아 복원하고 되새긴 공공 예술 축제 ‘모두의 풀이’는 예술로 과거와 현재, 시민과 주민을 잇는 현장을 보여줬다.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문을 연 ‘낙원’과 ‘프랙티스 유기력’은 책향기 그득한 곳에 시각예술의 매력을 전하며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2026부산비엔날레 기간 작지만 알찬 예술공간 15곳이 함께 한 아트 페스티벌 ‘다면적 실험실, 부산’은 지역의 새로운 미술 흐름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부산도시철도 전포역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청년 작가 전시 공간 ‘아트 스톱(ART STOP)’은 싱그럽고 생기발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들 현장은 모두 젊은 ‘전시 기획자’가 중심이 되어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도심 예술공간 또따또가를 바탕으로 모인 ‘모두의 풀이’의 심도시각 최민영 대표·실험실C 창파 대표·반달(문건호), ‘낙원’ ‘프랙티스 유기력’의 김정훈 유경혜 기획자·방기철 작가(징조 프로젝트), ‘다면적 실험실, 부산’을 엮고 이은 낭만시간연구소 김민서 대표·여수현 큐레이터, ‘아트 스톱’을 주도한 올아트22 문화기획 김미희 대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꾸준히 지역 예술 현장과 공간에서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소에 뛰어들어 예술가와 시민을 이어주며 이전과는 또 다른 예술 경험을 선사했다.
최근 지역 미술계에서 젊은 기획자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들뿐만 아니라 수영구에 있는 비영리 예술공간이자 작가·기획자 그룹 ‘공간 힘’(서평주 김효영 진세영 김선영 강주영)까지,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이를 사회와 연결하고자 고민하는 이들이 지역예술 현장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들의 등장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이런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은 20대부터 맨몸으로 현장에서 부딪치고 견디며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공공에서 시행하는 예술 지원사업이 창작자에 집중되어 있기에 작가와 현장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의 기획자가 설 자리가 좁기 때문이다. 각종 지원사업도, 각 대학의 교육 과정도 작가의 창작 활동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전시 기획’을 배우고 경험하며 역량을 쌓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기획자의 꿈을 키우는 이가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서울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앞으로 기획자가 부각될 기회가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키우는 장면도 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험과 성과를 이룬 기획자들이 부산으로 돌아와 다시 현장과 소통하는 사례가 생기고, 다른 지역의 기획자가 부산으로 옮겨와 새로운 시각과 목소리로 지역 작가들과 소통하는 케이스도 눈에 띈다. 작가로 시작해 기획자로 영역을 넓힌 이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사업 ‘포커스 온’은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와 기획자를 연결해 그들이 함께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어준다. 부산비엔날레에서도 지역의 젊은 기획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술을 꽃피우는 것은 창작자이지만 그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끌어내고 연결하는 기획자가 있어야 그 결과가 더 주목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은 기획자가 활개 칠수록 부산은 더 다양한 예술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경계를 따지기보다 더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를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발상의 전환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젊은 기획자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대학과 공공에서 여기에 관심 갖고 기회를 만들어주길 기대해본다.
김현주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