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산항이 개항한 지 꼭 15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6, 7일 이틀간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는 대규모 학술행사가 예정돼 있다. 이 행사는 ‘부산 개항 150년의 역사적 전환’이라는 주제로 부산시와 국사편찬위원회, 그리고 부산경남사학회를 포함해 각급 연구소와 관련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형태로 열린다. 때마침 올해가 해양수도 원년이기도 해 부산으로서는 150년 전 개항의 의미가 더욱 새롭고 뜻깊게 다가온다.
한국 근대사의 시작점이기도 한 1876년 부산항 개항은 세계사적으로 보면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시작된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한 언필칭 ‘서세동점’의 서구 제국주의의 파고가 동아시아의 마지막 종착지인 한반도 끝자락에 부딪히면서 일어난, 일찍부터 예고됐던 사건이다. 그 배의 모양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서양의 ‘이양선’이 한반도 해역에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무렵이다. 당시 이양선의 출몰로 조선에 큰 충격을 준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 범선 용당포 표착 사건’(이하 ‘용당포 사건’)이었다.
1797년 10월 13일 이양선 한 척이 지금의 부산 용당포에 닻을 내렸다. 이양선 이름은 ‘프린스 윌리엄 헨리호’이고 윌리엄 브로턴 함장이 이끄는 영국 국적 군함이었다. 브로턴 함장은 1797년 6월 27일 부하 35명과 함께 프린스 윌리엄 헨리호를 몰고 마카오를 출항해 일본 혼슈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 홋카이도를 경유해 9월 초 사할린 서쪽 해안 타타르해협에 진입했다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조선의 동해안으로 내려와 울산 앞바다를 통과한 후 식수와 땔감 등을 구하기 위해 마침내 동래 용당포에 표착했다. 브로턴 함장 일행은 용당포에서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간 머물고, 용당포를 출항해 11월 27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함선이 용당포에 머무는 동안 조선의 문정관이 나와 선박과 선원들을 조사했으며, 또 동래부사 정상우가 방문해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주도록 조치했다. 이 사건은 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관리가 조선의 관리를 공식적으로 접촉한 사례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서구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선 것은 식민지를 얻기 위함이었다. 대항해 시대의 끝자락에 동아시아가 있었고, 이때 동아시아 연안에 출몰했던 이양선은 식민지 쟁탈전의 첨병과도 같았다. 19세기 들어 서구 열강의 각축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동아시아 3국은 결국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국과 일본이 서구의 강압에 의해 문호를 개방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은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됐다. 150년 전 ‘강화도조약’에 의한 부산항의 개항이 그것이다. 그러나 부산항의 개항은 단순히 일본에 대한 개항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문호 개방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부산이 조선의 첫 개항장으로 지목됐던 것은 일본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유도 있었지만, 브로턴 함장의 용당포 사건이 말해주듯이 부산은 이미 유라시아 대륙 북방 항로의 핵심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용당포 사건 이후에도 19세기 들어 수많은 이양선이 한반도 연안 앞바다에 출몰했다. 특히 세계 최강의 해양 대국인 영국 선박의 출몰이 잦았다. 제국주의 시대에 새로운 항로 개척은 그 자체가 국력을 상징했다. 그러나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열강에 맞설 능력이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열강의 요구에 맞춰 타율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했으니, 그리하여 새로 생겨난 항구가 다름 아닌 ‘개항장’이었다. 상하이 홍콩 요코하마 나가사키 고베 등 지금 동아시아의 많은 주요 항구 도시가 개항장 도시였다. 부산 또한 그중 하나이다.
각설하고 지난 8월 22일 부산신항을 떠난 대한민국 국적 선박 ‘팬스타 아크로호’가 북극항로를 통한 유럽 왕복 시범 운항을 마치고 지난달 11일 성공리에 귀환했다. AI의 시대적 전환 속에서 해양수도 원년, 부산항 개항 150년에 맞춰 일구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극항로는 전 지구적 기후 위기가 초래한 북극해의 해빙, 유례없는 기후 재앙이라는 역설적인 상황과 맞닿아 있다.
150년 전 부산항의 개항은 서구 문명이 개척한 근대 항로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저들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타율적 선택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러함에도 우리가 새로운 시대적 전환기에 선택의 기로에 처했다는 점에서는 양자 사이에 꽤 공통점이 있다. 부산에서 시작된 북극항로가 평화의 문을 여는 새로운 항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난달 부산YMCA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전재수 부산시장은 북극항로와 관련해 ‘친환경 해운 중심 해양수도 도약’을 꼽았는데, 이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발언일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