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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달석 작가의 ‘목동’. |
2년 동안의 휴관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재개관전으로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 1945-1953’가 열리고 있다. 전시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는 서양화가 양달석(梁達錫, 1908-1984)이다. 그는 초기에는 입체파 등 전위적인 사조를 받아들여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으나, 후기에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이 때문에 화단에서는 근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진보적인 작가라는 평가와, 비슷한 소재를 반복한 대중적·상업적 화가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특히 소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그림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그의 풍경화가 단순한 서정성의 부산물만은 아니라는 새로운 평가를 얻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난 양달석의 삶은 그림 속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고단한 현실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소를 먹이며 자랐고, 통영공립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거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유학을 결심하고 도쿄의 데이코쿠미술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신문 배달과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입체파와 야수파 등 서구의 전위미술을 공부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귀국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일본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본에서 발간된 미술 잡지를 통해 최신 사조를 접하고 방학이면 도쿄를 찾아 관련 정보를 얻었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도쿄를 오가며 일본 초현실주의의 개척자였던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 1898-1992)의 화숙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1954년에 그린 ‘목동’은 양달석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이다. 화사한 봄날 산 중에 어린 세 아이가 세상 걱정을 잊은 듯 있고, 개중 한 소년은 피리를 불고 있다. 그 곁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부드러운 산등성이는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근하다. 서양화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자리한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이 풍경은 그가 살아온 비극적인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시대에 그려진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은 절망에 빠진 세상을 향해 예술이 건넬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보여준다.
양달석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전쟁의 비극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그림들과 달리, 상처와 파괴가 미치지 않는 순수한 세상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현실에 맞섰다는 점에 있다. 이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인간다움과 존엄성이 사라져 가던 시절에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예술적 의지로 읽을 수 있다. 시대의 고통을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그의 그림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고 다정한 평온과 희망을 전하며, 예술이 지닌 위로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