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60> 吉凶由人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3-14 20:13:38
  •  |  본지 25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길할 길(口-3)흉할 흉(-2)말미암을 유(田-0)사람 인(人-0)

주나라 유왕은 褒似(포사)라는 여인을 총애했고, 포사가 아들 백복(伯服)을 낳자 이미 세운 태자를 폐위하고 태자의 모친까지 내쫓는 무도한 짓을 했다.(앞서 거론한 진나라 헌공이 저지른 일과 비슷한 짓을 먼저 한 셈이다.) 게다가 간사하고 아부를 잘하는 鷁石父(괵석보)에게 국사를 맡겨 백성의 원성까지 샀다. 또한 제후들의 신뢰를 잃는 짓을 거듭하여 견융의 침입 때 아무도 구원하러 오지 않았다. 이것이 유왕이 죽고 주 왕조가 도읍을 옮기면서 춘추시대가 시작된 이유였다.

이렇게 만물이나 현상이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한 때가 고대였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춘추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연 현상과 인간사를 떼어놓고 이해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령, '춘추'의 僖公(희공) 16년(기원전 644년)에 "여섯 마리의 鷁鳥(익조)가 뒤로 날아서 송나라의 도성을 지나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새가 거꾸로 나는 것은 분명히 기이한 일이다. '춘추'에 이를 기록한 까닭은 그 기이한 일이 곧 인간사의 길흉과 관련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 일에 대해 주나라의 內史(내사)인 叔興(숙흥)도 "이는 단순한 음양 현상이지 길흉과는 관계 없다. 길흉은 본래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좌전'을 보면, 昭公(소공) 18년(기원전 524년) 5월 14일 宋(송)나라와 衛(위)나라, 陳(진)나라, 鄭(정)나라에서 동시에 불이 났다. 이를 당시 사람들이 불길한 조짐으로 여겼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정나라에서는 이 일은 꼬투리일 뿐이고 앞으로 더 큰 불이 나서 나라가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정나라의 정치가 子産(자산)은 이렇게 답했다. "천도(天道)는 멀고 人道(인도)는 가까우므로 서로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어찌 천도로 인도를 알 수 있겠는가?"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제자인 번지(樊遲)가 앎에 대해 묻자, 공자는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곧 "백성들이 올발라지도록 힘쓰고, 귀신을 삼가 받들면서 멀리한다면,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신령이나 조상신이 당연히 있다고 믿으며 그들에게 지내는 제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때에 공자는 "삼가 받들면서 멀리하라"고 말했다. 또한 공자는 천도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자산의 말처럼 천도는 인간과 멀리 떨어져 저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전학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busan momfair 2017 부산 맘페어10.20(금)~22(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농협
2017일루와페스티벌
s&t 모티브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경남개발공사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