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 귀(鬼-0)도깨비 매(鬼-5)쉬울 이(日-4)그지(丿-3)

귀신이나 도깨비가 그리기 쉽다고 하자 왕은 당연히 어리둥절해 했다. 이에 빈객은 이렇게 설명했다. “夫犬馬, 人所知也, 旦暮罄於前, 不可類之, 故難. 鬼魅, 無形者, 不罄於前, 故易之也.”(부견마, 인소지야, 단모경어전, 불가류지, 고난. 귀매, 무형자, 불경어전, 고이지야)

“대체로 개나 말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보이므로 똑같게 그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귀신이나 도깨비는 형체가 없고 눈앞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리기가 쉽습니다.”

여기서 빈객은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즉 누구나 보는 것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기의 어려움과 쉬움을 설명했다. 실제로 그렇다. 귀신이나 도깨비는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그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개나 말은 본 사람이 많아서 조금만 붓질을 잘못해도 지적받을 수 있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실재하는 것을 참으로 그리기 어려운 까닭은 누구나 그 대상을 보고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나 ‘말’이라고 말은 했으나, ‘개’라고 해서 다 똑같은 개도 아니고 ‘말’이라 해서 다 똑같은 말이 아니지 않은가. 개나 말만 다른 게 아니라 그 많고 많은 개나 말 가운데서 어떤 개를 보고 어떤 말을 보았는지도 사람들마다 다르다. 내가 그린 개가 그가 보았던 개인지 어찌 알겠는가?

더욱 중요한 점은 과연 화가가 그린 그림이 실재하는 대상을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개나 말을 앞에 두고 그렸는지, 아니면 그 자신이 본 것을 떠올려서 그린 것인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또 개나 말을 앞에 두고 그렸다 하더라도 그 그림이 완성된 뒤에 실재하는 개나 말과 똑같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모델이 되었던 개나 말은 날마다 달마다 변해간다. 어쩌면 곧 병이 들었거나 이제는 늙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반면에 그림 속의 개나 말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개나 말은 실재하는 개나 말이라 할 수 있는가? 노자가 문제 삼는 것은 이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