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단지 효과가 빠른 것만 취하고 빨리 되는 방법만 찾는다. 성현의 책은 높은 시렁 위에 묶어 두고, 날마다 영리하게 남을 기쁘게 할 자질구레한 글만 찾아다가 훔쳐서 슬쩍 바꿔 시험관의 안목에 들어 합격을 이룬 자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벼슬길에 약삭빠른 자가 취할 방법이지, 너희처럼 성품이 우둔하고 이름을 다투는 데 능하지 못한 사람이 쉬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今世京洛間小兒, 如倚市販賣之人, 只取近功而求速化之術. 將聖賢書, 束諸高閣, 日尋伶俐悅人小文字, 偸竊點綴, 以中有司之目, 而得有所成者多矣. 然此則乃一種巧宦家法門, 非如汝輩性鈍愚而不善爭名者所易效.(금세경락간소아, 여의시판매지인, 지취근공이구속화지술. 장성현서, 속제고각, 일심령리열인소문자, 투절점철, 이중유사지목, 이득유소성자다의. 연차칙내일종교신가법문, 비여여배성둔우이불선쟁명자소역효.)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의 ‘여러 아들에게 부친 편지(寄諸兒)’ 내용 중 일부로, 그의 문집인 ‘서애집’에 실려 있다.
자식들에게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즉 엄격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유성룡은 1566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장 등 여러 부문에서 이름을 떨쳐 영남 유생들의 추앙을 받은 문사이다. 우리는 그가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인 ‘징비록’(국보 제132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요즘 유력 인사들이 자식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종종 본다. 조선 중기에도 약게 공부해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유성룡은 상주목사·경상도 관찰사·대사간·대사헌·병조판서·이조판서·좌의정 등을 비롯해 영의정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의 자식들이 참다운 공부보다는 출세에 관심을 가지는 추세를 염려하면서, 자기 자식들에게는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바른 공부를 하라고 당부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서애 유성룡을 통해 아버지는 어떠한 모습을 견지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시인·고전인문학자